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14> 부패:죽음에 이르는 병

공무원의 개혁 동참·의식 변해야
만연한 '부패 고리' 끊을 수 있어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지만, 개인의 절망 못지않게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현대 사회의 큰 병은 ‘정부의 부패’라고 할 수 있다.

정부 부패가 낳은 '불신의 덫'…기업가 정신도 사그라진다

2006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특별보고서에 의하면 매년 120만명의 어린이가 깨끗한 물을 사용하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2013년 유니세프(UNICEF)는 매일 2000명의 다섯 살이 안 된 어린이들이 오염된 물로 인한 설사병으로 죽어간다고 보고했다. 이는 유치원생을 가득 태운 90대의 버스가 전복돼 생존자가 한 명도 없는 상황이 매일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다.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 물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기술이나 자본 또는 부자 나라들의 선의(善意)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선진국들이 한 해에 개발도상국의 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제공하는 원조금액은 10조원에 이른다. 원인은 부패한 정부에 있다. 원조금의 상당 부분을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가로채고, 물공급 체계와 정화 시설의 건설 과정에 부패가 만연하고,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서비스체계도 부패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는 소위 ‘두부공정’이라는 속이 빈 벽돌을 사용해 지은 학교 건물이 쉽게 붕괴해 수많은 어린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역시 부패한 관료가 건축업자들을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결과였다.

죽음에 이르는 부패가 저개발국이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은 세월호의 비극이 잘 말해준다. 평형수를 덜어내고 과적을 한 배가 수많은 승객을 태우고 버젓이 운항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해운사업 전체에 만연한 부패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로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한 해운업계 전반의 구조적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로 269명이 입건되고 88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항만물류업체, 해운조합, 선주협회 등으로부터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국회의원, 거래업체 선정과 안전운항 위반사례 묵인 등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해운조합의 간부들, 선박 총톤수 측정 관련 편의 제공 명목으로 뇌물을 수수한 공무원 등 부패 혐의로 인한 구속자 명단은 정부, 공공기관, 해운사, 노조 등 해운업계 전반에 걸쳐 있다. 이처럼 해운업 거버넌스 구조에 만연한 부패가 세월호 침몰의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해운비리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집중적인 조사 대상이 됐지만, 과연 이것이 해운부문에만 특별한 현상일 것인가. 구체적인 사건에서 헤아릴 수 있는 죽음으로 귀결되는 부패도 있지만, 건강과 삶의 질을 낮춰 결과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고,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들, 부패가 경제성장을 가로막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죽음들도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부패는 죽음에 이르는 큰 병이 아닐 수 없고, 부패한 이득을 취하는 사업가와 관리들은 살인행위의 공모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의 어느 학자는 부패를 ‘킬링필드(killing field)’라고까지 했다.

부패의 직접적인 효과는 관련 행위자들의 인센티브 구조를 왜곡해 개인과 조직의 결정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원칙에 어긋나게 하는 것이다. 부패한 사회의 국민들은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기업가적인 창조성을 발휘하기보다는 관리들과 친분을 맺고 뇌물을 제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부패의 사례가 전 사회에 던지는 ‘신호주기(signaling)’의 효과다. 공론화되는 부패의 사례들은 일반 시민에게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사회가 어떤 실질적인 규칙을 바탕으로 운영되는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획득하고 사용하는가에 대한 신호가 된다. 이런 신호는 현실을 훨씬 과장된 형태로 전달하기도 한다. 정부 관리들이 부패했다는 인식이 퍼져나가면 정부에 대한 불신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불신이 팽배해지게 된다. 정부 관리의 부패는 불법적인 ‘지대추구(rent seeking)’를 통해 이득을 얻고자 하는 민간의 행위자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패했다는 인식의 확산은 협동과 절제가 필요한 사회 여러 영역에서 정직함과 호혜성의 규범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동기를 약화시키고, 사회, 경제, 정치 각 부문의 크고 작은 협동을 어렵게 만든다. 부패는 또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약화시킨다. 정부와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복지정책을 위한 세금을 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과 복지 지출에 대한 유권자의 의심으로 인해 부패는 빈곤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부패-불신-소득불균형’이 하나의 사회적 균형 상태를 이루게 된다.

부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는 교과서적인 해답은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고 공무원의 보수를 적절한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반부패 법률을 엄정하게 정립하고 반부패 기관의 권한과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동반해야 한다. 다행히 ‘관피아방지법’이 최근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김영란법’의 제정이 난항을 겪고 반부패 전담기구가 부재한 것, 부패 공무원에 대한 관대한 처벌 등은 한국사회의 부패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아직 선진국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함을 보여준다.

반부패개혁은 공무원들과의 전쟁이 돼서는 안 된다. 공무원의 부패가 큰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많은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 봉사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제공하는 것이 감시, 처벌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고위공무원의 보수가 OECD 국가 평균은 국민소득의 6배임에 비해 한국은 4배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낮은 보수를 보전하는 방식이 관피아로 재취업하는 등 음성적인 대가의 추구로 나타나고 있다.

반부패개혁에 공무원을 동참시키고 엄정한 규칙의 도덕적인 정당성을 공무원 사회가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게 하려면 공무원에 대한 합법적인 보수를 투명하고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부패개혁이 한순간에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차근차근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한 근본적인 동력은 국민의 의식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 스스로가 청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인과 공무원을 감시하지 않는다면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기는 힘들다.

■ 정보의 비대칭이 공무원 도덕적 해이 불러

정부 부패가 낳은 '불신의 덫'…기업가 정신도 사그라진다

부패란 공적인 권한을 사적인 이득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권한이 공적이라는 것은 그 권한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위임받았다는 뜻이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자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권한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며, 그런 위임계약의 취지와 규칙에 따라 행사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한시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직자는 대리인이며 주인인 국민의 안전과 후생을 위해서만 그 권한을 사용해야 한다. 이런 관계를 ‘주인-대리인(principal-agent) 관계’라고 한다. 그런데 업무에서 필요한 전문성, 업무를 수행하는 환경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주인은 대리인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정확하게 감시하기 어렵다. 부패는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을 배경으로하는 도덕적 해이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패는 주인-대리인 이론만으로는 그 본질을 이해하고 처방을 제시하기 어렵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가 부패했다면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엄격하게 집행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지방정치부터 아파트자치회에 이르는 삶의 공간에 부패가 퍼져 있다면 반부패 개혁을 위한 국민적인 추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처럼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부패는 ‘집합행동’의 문제 또는 ‘사회적 딜레마’의 상황으로 봐야 한다. 모두가 정직하다면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을 다 알고 있더라도 부패가 만연할 수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대부분이 정직할 것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만 정직한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만연한 부패의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데 이것이 집합행동의 문제 또는 사회적 딜레마의 상황이다. 이처럼 만연한 부패의 상황에서는 특별한 계기를 통한 집중적인 ‘반부패캠페인’과 빅뱅식의 급격한 개혁이 필요하다.

안도경 <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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