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정치권 '툭하면 고발'…비리 척결 언제?
“정치적인 다툼은 자체적으로 좀 해결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분쟁만 생기면 떠넘기는 데다 다른 사건은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사건 수사 당시 한 검찰 관계자가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발언 여부를 두고 촉발된 여야 갈등이 회의록 열람에서 봉합되지 않고 상호 고소 고발로 이어지면서 이목이 집중됐을 때다. 회의록을 둘러싸고 고의 삭제와 허위사실 유포 등 양측이 서로 제기한 의혹을 풀기 위해 검찰은 대규모 조사팀을 꾸렸다. 수개월간 첨단 장비와 기술을 동원해 집중 수사했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만 남긴 채 끝이 났다. “정치적인 사건에 뭣 하러 우수한 수사 인력을 낭비하느냐”는 불만도 나왔다.

정치권의 ‘툭하면 고발’ 행태는 최근에도 반복되고 있다.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둘러싼 일명 ‘십상시’ 회동 관련 문건을 보도한 S사 기자와 경영진들은 청와대 비서관들로부터 단체로 고소를 당했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도 관련 보도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D사 기자를 고소했다. 반대로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씨와 청와대 비서관들을 국정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또다시 ‘난타전’이 됐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일반 민생사건이나 거악을 척결하기 위한 수사는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검찰 내부의 감찰 및 비위 관련 사건을 주로 전담해왔으나 최근에는 밀려드는 명예훼손 고소 고발 사건을 떠맡느라 연일 허덕이고 있다. 올해 기업 범죄와 정치권 로비 등을 수사해 온 특수2부도 최근에는 문건 유출 수사 한 건에 매달려 있다. 또 언론사 보도에 대한 정부의 고소 고발이 늘면서 언론의 자유 문제도 도마에 오르는 상황이다.

법무부도 언론 보도만을 근거로 한 제3자 고발을 막는 등 무차별 고소 고발 방지를 위해 법안 마련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정작 정치권에서는 가장 후진적인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엉뚱한 모습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의 독립성이 담보되지 않는 이상 정치권 갈등에서 비롯된 수사는 정치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며 “특정 사실 유포자에 대해서도 무조건 처벌을 유도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우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정소람 법조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