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적성 잣대로 SSAT 자격 부여…'서류전형' 부활 지적
"직무 무관한 스펙 미반영…통상적인 서류전형과 달라"


삼성그룹이 5일 발표한 새로운 신입사원 채용제도는 직무별 전형 절차를 다양화하고 서류로 직무능력을 평가하는 '직무적합성평가'를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위주로 진행돼온 획일적인 채용 방식을 직군별로 다양화하면서 직군별 직무역량 검증 절차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삼성그룹 입사 지원자들은 직무적합성평가를 먼저 통과해야만 SSAT 시험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SSAT 전 단계에서 제출 서류만으로 이뤄지는 직무적합성평가의 도입을 사실상 '서류전형'의 부활로 보는 시각이 많다.

국내 산업계를 주도하는 삼성그룹의 이 같은 채용제도 변화는 고용시장과 업계 전반에 작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 사실상 서류전형 부활…삼성 "통상적 서류전형과 달리"
삼성그룹이 새로 도입하는 직무적합성평가는 실제로 제출 서류를 토대로 필기 시험이나 실무 테스트를 시행하기 전에 상당수의 지원자를 걸러낸다는 점에서 서류전형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통상의 서류전형이 출신대학, 학점, 어학성적, 자격증 등 스펙을 기준으로 삼는 데 반해 직무적합성평가는 출신대학 등 직무와 무관한 스펙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 차이점이다.

달리 말하면 일반적인 스펙 대신 직무적성을 잣대로 한 서류전형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그룹은 "직무적합성평가에서는 직군별로 필요한 직무역량을 중심으로 평가하며 출신대학 등 직무와 무관한 스펙은 반영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삼성그룹은 1995년 지금의 신입사원 채용제도인 '열린 채용'을 도입하면서 학력 제한과 성 차별을 없애기 위해 서류전형을 아예 폐지하고, 종합적인 자질을 평가하는 SSAT를 도입했다.

삼성그룹은 이에 대해 "통상적인 의미의 서류전형처럼 출신대학, 평균학점, 자격증, 어학성적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류전형의 부활로 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 SSAT 부담 크게 줄어들 듯
이번 채용제도 개편으로 삼성그룹은 매년 20만명이 몰리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는 SSAT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일 수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은 SSAT 응시 자격을 제한하는 직무적합성평가 외에도 SSAT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른 방안도 내놨다.

소프트웨어직군 지원자는 직무적합성평가를 통과하면 SSAT 대신 실무테스트인 '소프트웨어 역량테스트'를 보게 해 우수한 지원자를 선발하기로 했다.

또 전공 능력이 중요한 연구개발·기술직군 지원자는 전공만 충실히 이수하면 상당한 가점을 주어서 SSAT 부담을 줄여줄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실무면접과 임원면접으로 진행해온 면접 절차에 창의적인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창의성 면접'도 추가하기로 했다.

삼성그룹은 사설학원까지 생겨 SSAT 대비 강의를 운영하고 SSAT가 '삼성 고시'로 불리는 등 입사 경쟁이 과열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지난해부터 채용제도 개편을 추진해왔다.

◇ 산업계·고용시장 영향 클 듯
삼성그룹은 과거에도 시기마다 파격적인 채용 제도로 국내 기업들의 채용 관행에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1995년 도입한 열린 채용은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획일적인 채용 제도를 개선하고 입사 지원 문턱을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채용제도 개편도 의도하지 않은 과도한 입사 경쟁에 때문에 나온 고육책의 성격이 짙지만 고용시장과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취업준비생들이 몰려 있는 대학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취업포털인 사람인의 임민욱 팀장은 "단순히 스펙을 보는 게 아니라 직무 역량이 뛰어난 우수한 인재를 뽑겠다는 '스펙 초월'의 의지가 보인다"며 삼성의 채용제도 개편안에 대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학벌은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스펙 가운데 하나인데, 본인이 지원할 직무 역량을 쌓는 데만 집중한다면 합격률이 높아진다고 한 점이 특히 긍정적"이라며 "이런 의지가 다른 기업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현혜란 기자 abullapia@yna.co.krrun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