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로펌 '현대판 음서제' 사라져야
“대표나 파트너 변호사의 자녀를 채용하지 않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고 로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인재 채용을 담당하는 한 변호사가 최근 대형 로펌에 법조인 자녀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변호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불공정하게 채용하면서 변호사에게 공익활동을 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세종은 부정한 청탁을 막기 위해 대표나 파트너 개입이 불가능한 인재채용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 채용시험에서 가족관계란을 없앴다.

하지만 대부분 대형 로펌은 “사기업인 로펌이 유력 인사 자제를 채용하는 것은 소송이나 사건 수임 등에 유리한 전략”이라고 말한다. 실제 부모와 자녀가 한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고위 전관 출신인 A로펌 파트너 변호사의 아들은 로스쿨 출신으로 해당 로펌에 취업했다. A로펌의 또 다른 파트너의 아들도 같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형 로펌인 B로펌도 파트너 변호사의 딸이 해당 로펌에 입사했다.

이 로펌들은 소속 변호사들이 반발하는 등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수 인재도 지원하지 않는다. 불공정한 채용으로 소문난 로펌 중 한 곳은 올해 사법시험 출신 군법무관을 한 명도 뽑지 못했다. 군법무관은 대형 로펌의 1순위 스카우트 대상이다. 한 군법무관은 “청탁 등으로 뽑힌 변호사가 많은 로펌엔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 같은 특혜는 앞으로 경력 변호사 위주로 판사를 뽑는 법조일원화 정책을 고려할 때 법조계 전체의 불공정 문제로 확대될 소지가 크다.

로펌의 역사가 한국보다 앞선 글로벌 로펌의 인재 채용 정책은 이런 점에서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1200여명의 변호사가 근무하고 있는 특허전문 글로벌 로펌 롭스앤그레이는 “현직 파트너 변호사의 자녀는 채용하지 않는다”는 내부 규칙을 두고 있다. 법률가는 기본적으로 정의와 공정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정성 논란이 야기될 수 있는 채용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 글로벌 로펌 관계자는 “이런 채용 과정의 공정성 덕분에 롭스앤그레이가 150년 동안 존속할 수 있었다”며 “대부분의 글로벌 로펌은 이 채용 기준을 지킨다”고 설명했다.

배석준 법조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