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부터 새롭게 기초생활보장을 받을 예정이었던 취약계층 37만명에 대한 예산 지원이 무산됐다. 줄잡아 4400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국회가 정치적 이유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처리를 미루면서다. 국회 파행에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비극이 재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표적인 민생법안으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가장 먼저 꼽은 것은 그만큼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이 담고 있는 ‘맞춤형 개별급여’는 최저생계비를 한꺼번에 지급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생계급여, 주거급여 등으로 나눠 빈곤층의 혜택을 늘리자는 게 골자다. 계획대로라면 10월부터 실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보건복지부는 올해(10~12월) 예산 2300억원에 대해 불용처리를 확정했다. 관련 법이 아직도 국회에 묶여 있는 데다 법 통과 후 지급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당장 통과한다 해도 내년 3월은 돼야 시행이 가능하다. 내년 초(1~2월) 예상 예산 2100억원(심사 중)까지 합치면 당초 취약계층에 돌아갈 예정이었던 4400억원이 완전히 사장돼버린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으로 새로 지원받게 될 취약계층은 올해 하반기에만 17만명이었다. 내년 1월부터 추가로 포함하기로 했던 수급자 20만명까지 합치면 취약계층 37만명이 내년 초엔 새롭게 정부의 사회안전망 안에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이들 취약계층은 국회 파행으로 향후 수개월간 한푼도 받지 못하게 됐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들은 월 최대 140만원(4인가구 기준)까지 새롭게 받게 될 예정이었다.

제도가 개편되면 기존 기초생활수급자 135만명이 받을 수 있는 월평균 수급액도 42만4000원(1인가구 기준)에서 43만8000원으로 1만4000원 오르지만 이 또한 연내 적용이 무산됐다.

더 큰 문제는 이토록 취약계층 보호에 중요한 기초생활보장법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올초엔 기초연금법을 두고 벌인 여야 간 줄다리기에, 이후엔 의료민영화 논란에 밀렸다. 최근엔 세월호 특별법 논란까지 겹쳤다. 국회에서 1년 넘게 묵혀 놓고 있지만 기초연금법 통과 이후 법안소위는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