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계수학자대회 개막] "수학은 금융·유전학 난제 해결사…수학자 몸값 점점 높아져"
“여덟 살 때 의사가 되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똑똑하고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에겐 의사가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거였죠. 수학자는 돈을 못 번다면서요. 하지만 저는 수학자가 됐습니다. 돈도 벌었고요.”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개막] "수학은 금융·유전학 난제 해결사…수학자 몸값 점점 높아져"
미분기하와 이론물리학계에 한 획을 그은 이론을 고안한 수학 교수. 헤지펀드 회사를 창업해 연평균 30%대 수익률을 올리는 펀드를 직접 설계한 펀드매니저. 자폐증 연구 지원부터 남미 수학자 양성까지 다양한 기초과학 후원사업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회사업가.

세계적 헤지펀드 회사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를 설립해 금융업계의 전설적 인물이 된 제임스 사이먼스 명예회장(76·사진)의 이력은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를 꿰뚫고 있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수학’이다. 올해 포브스 선정 세계 부자 순위 88위에 올라 수학자 출신으로는 가장 돈을 많이 번 그가 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를 찾았다. 이날 개막한 서울 세계수학자대회(ICM) 2014에서 ‘수학과 삶’이라는 주제로 대중강연을 하기 위해서다.

대중강연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그는 수학 예찬론을 폈다. 사이먼스 명예회장은 “수학은 굉장히 아름다운 학문”이라며 “단순히 즐거울 뿐 아니라 금융 유전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 난제를 풀 수 있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숫자와 논리, 모델링에 늘 마음을 빼앗겨왔다”고 했다.

사이먼스 명예회장은 본래 기하학을 전공한 순수수학자 출신이다.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수학과 교수를 맡고 있던 1974년에는 미분기하 분야의 대가인 고(故) 천성선(陳省身)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천-사이먼스’ 이론을 발표해 1976년 미국수학협회가 수여하는 세계적 권위의 ‘오즈월드 베블런상’을 탈 정도로 전도유망했다.

그런 그가 1978년 돌연 월스트리트에 뛰어들어 단기금융투자로 큰돈을 벌었다. 2005년부터 3년간은 전 세계 펀드매니저 연봉 1위를 기록했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는 금융인이 아닌 수학과 통계학 전문가를 뽑아 금융 모델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이먼스 명예회장은 “펀드가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 자세한 원리는 영업비밀이라 밝힐 수 없지만 핵심은 데이터”라며 “기업 실적, 주가 등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보고 이를 기반으로 매매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에 근거한 투자 전략은 리스크가 많다”며 “일본 시장에서 주택가격이 절대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견고한 믿음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전제조건임이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수학자의 몸값은 금융업계에서 끝없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사이먼스 명예회장은 “금융계에서 많은 일이 통계와 수학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며 “리스크 관리와 상품기획, 채권시장부터 주식시장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수학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구글의 검색엔진도 수학적 알고리즘을 활용한 것”이라며 “수학과 관련 있는 분야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했다.

그는 대중강연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라 △최고의 인재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어라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일을 하라 △포기하지 마라 △행운을 기원하라는 다섯 가지 인생 지침을 제시했다. 사이먼스 명예회장은 “열네 살 때 아르바이트로 창고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너무 못했다”며 “당시 가게 주인 부부는 물건도 정리할 줄 모르면서 어떻게 수학자가 되겠느냐고 비웃었지만 나는 수학이 정말 좋았고, 결국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