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지하철 요금의 겉과 속
상왕십리역 추돌사고를 기억하시는지? 3개월도 안됐지만 까마득해졌다. 대도시의 발, 지하철 안전문제는 한 번 떠들어본 걸로 그만이었다. 전력대란 대소동도 어느새 옛 얘기다. 원전 3기가 정상화돼 일단 올해는 블랙아웃 걱정이 없다. 3년, 5년, 10년 뒤 수요가 급증해도 그럴까. 지하철 안전도, 전력수급도 미봉책으로 간다. 비용과 가격, 부채와 최종 부담자에 대해 정면대응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 어디에도 안전과 여유는 없다. 세월호도 궁극적으로는 경제계산의 문제였다.

비정상 요금, 이용자 실부담 원칙

현행 지하철 요금도 포퓰리즘 정책의 한 사례다. 서민교통이라는, ‘민생 성역지대’의 한 부문이다. 그 결과가 비정상 요금체계다. 서울 1~4호선의 서울메트로 부채만 3조3319억원, 적자는 매년 2000억원을 오르내렸다. 조금 줄었다지만 지난해도 1295억원. 민자까지 유치하고도 서울지하철 부채는 4조원을 넘어섰다. 공사의 모든 경영합리화 노력을 무위로 만드는 블랙홀이다. 이런 재무구조에서 공사가 경영개선에 전력투구를 않는 건 차라리 자연스럽다. 저 빚더미에 복지축소, 업무개선 등 연간 몇십억원짜리 노력이 생색이나 날까. 공기업 특유의 도덕적 해이가 있지만, 비판하기엔 재무구조가 원죄다. 시·도 산하인 탓에 전국의 지하철은 공공개혁에서도 안전지대다.

개혁의 정공법은 적정수준으로 요금 올리기다. 지하철은 공공교통일 뿐,꼭 서민교통도 아니다. 억대 연봉자도 기본 1050원으로 일터에 닿는다. 공짜 같은 가격에 심야에도 운행된다. 지하철과 준공영버스의 유비쿼터스 편리는 엄연히 비용의 대가다. 석유라도 펑펑 쏟아져 모든 게 계산되면 모를까, 마냥 외면할 수 없다. 가령 밤 10시부터는 15분마다, 11시 이후엔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것도 일종의 요금 현실화다. 10시, 11시 이후엔 야간 할증도 도입하자. 주말엔 배차를 줄이고 휴일 할증에, 휴일야간 할증까지 필요하다.

서민 이용이 많아 못 올린다고? 빚을 줄여 공사 경영이 정상궤도에 들어서면 적자보전금 등으로 저소득층에 교통비를 직접 지원할 수 있다. 학생할인, 장애·저소득층 바우처 같은 선별적 복지가 맞다.

비용개념없인 국가혁신도 헛구호

65세 이상에 무차별 공짜도 당연히 재고해야 한다. 정히 섭섭하면 한 달에 10장 정도로 무료표를 제한하되, 진짜 서민에게 더 주자. 비용 개념이라고는 없는 공짜 심리를 무작정 확대할 순 없다. 조단위 부채를 언젠가, 누군가는 갚아야 한다. 이대로 두면 자식들 몫이다. 안 그래도 복지수요는 곳곳으로 팽창하는데 이런 세대착취를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가. 인정은 하지만 그래도 당장은 부담이라고? 그러면 인상 예고제는 어떨까. 1년 뒤 30%, 2년 뒤 50%, 3년 뒤 100% 인상…. 부채 전광판 설치도 경각심은 된다. 칼자루를 쥔 선출직들은 표 떨어질 일엔 질색한다. 님트(not in my term·내 임기 중엔 불가)현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경영 부실 다 덮는 구실인데, 공사가 나설 리도 만무하다. 시민들이 압박해야 한다. 가격의 원리를 이용자 스스로 깨닫는 게 그 시작이다.

지하철 사고가 재발해도 고칠 비용도 없다. 상왕십리 사고 때도 돈이 없어 낡은 전동차를 계속 운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선의 정비, 최고의 운전이라면 일시 연장은 되겠다. 하지만 공사는 공사라는 게 한계다. 안전 비용을 계산하고 지불해야 한다. 포퓰리즘과 공짜심리로 안전의 둑은 슬금슬금 무너져왔다. 전력수급도 이치는 같다. 국가개조다, 안전혁신이다 번잡하지만 비용문제를 빼놓으면 헛구호에 그칠 것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