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좌석버스도 고속화도로 달리지만 대상에서 아예 누락
버스안전 정책 큰 허점…운행실태 무지한 졸속·탁상행정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금지 정책에 당초부터 큰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와 경기도가 시행한 서울-경기 고속화도로 운행 버스 입석금지 조치는 직행좌석형(빨간색) 광역버스에만 적용되고 일반좌석형(파란색) 간선버스는 대상에서 아예 제외돼 있다.

그러나 경기도와 서울시를 오가는 일반좌석버스도 상당수가 고속화도로를 운행하고 있다.

빨간색 버스 입석금지 조치로 시민들이 불편과 혼란을 겪고 있지만 파란색 버스는 입석손님을 가득 태운 채 아무 규제 없이 고속화도로를 달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 일부 빨간색 버스는 입석손님을 태우고 당초 허가받은 노선인 고속화도로를 피해 간선도로로 편법 운행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 대책인 입석금지 조치가 졸속·탁상행정 탓에 처음부터 삐걱거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고양시에 따르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자유로, 강변북로 등 고속화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광역버스 외에도 간선버스 노선이 5개 더 있다.

여의도행 108번과 871번, 영등포행 830번과 870번, 신촌행 921번이다.

이 중에서 830번과 1500번은 일산IC-자유로-강변북로를 거쳐 영등포로 진입하는 노선이 같은데도 빨간색 1500번만 입석금지 대상이다.

고양시 탄현동-서울 서강대를 운행하는 921번 버스와 파주군 교하동-서울 합정역을 왕복하는 200번 버스도 마찬가지다.

두 버스 다 자유로 일부와 강변북로를 지나지만 빨간버스인 200번만 입석금지됐으며 파란버스인 921번은 누락됐다.

고양과 파주 외에 경기도 내 다른 지역들에도 이 같은 사례는 허다하지만 당국은 아예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경기도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도내 전체 버스 노선이 2천개 가량이고 시·군에서 관리하는 업무여서 일반좌석형 가운데 고속화도로 지나는 노선이 있는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경기도는 연합뉴스가 취재를 시작하자 이틀째인 17일에야 뒤늦게 시·군별로 고속화도로를 지나는 모든 버스의 입석해소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반좌석버스를 관리·단속하는 기초자치단체들도 현재로선 실태 파악이나 뾰족한 대책 마련이 쉽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양시 윤권덕 대중교통팀장은 "고속화도로를 조금이라도 지나는 모든 버스를 입석 금지하려면 현재의 3분의 1은 버스 대수를 늘려야 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버스는 급히 조달한다고 해도 운전기사 부족으로 당장 실행이 어렵다.

파주의 경우 당초 입석금지 대책으로 노선을 신설하면서 14대를 늘리기로 했으나 운송업체의 운전자 수급 실패로 운행되지 못했다.

윤 팀장은 "고속화도로라고 하더라도 출퇴근시간대에는 속도가 거의 나지 않는 구간을 달리기 때문에 모든 버스를 단속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노선 버스는 고속화도로 대신 일반도로로 편법 우회 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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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능곡에서 서울 구로구 가산디지털단지로 출퇴근한다고 밝힌 임형구(52)씨는 "빨간색 직행좌석인 9707 버스가 문제가 되는 고속화도로인 자유로를 경유하지 않고 수색로로 우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씨는 "문제는 이로 인해 영등포 도착 시간이 최소 30분 이상 더 걸리는 것"이라면서 "경의선 전철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3∼4번 환승을 해야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근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갑자기 대책도 없이 제도를 바꾸니 서민들 희생만 강요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영등포로 출퇴근하는 일산 주민 김태은(28·여)씨는 수도권에서 서울로 나가는 버스는 전부 입석이 안 된다는 얘기 같은데 종점에서만 버스를 타라는 것인지, 어이없는 정책"이라고 토로했다.

(고양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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