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진보교육감 당선 공약 자사고 폐지해야 하나
지난 64 교육감 선거에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3곳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됐다. 이들 진보교육감 당선자가 내세운 공통 공약은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의 축소 또는 폐지, 고교평준화 강화, 혁신학교 확대 등이다. 자율형 사립고는 이명박 정부의 학교 다양화 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전국 49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정부의 지원이 없다 보니 등록금을 일반고의 3배까지 받는다. 5년 단위로 평가해 재지정이나 취소 여부를 결정하게 돼 현재 25곳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자사고 폐지론자는 자사고가 입시 위주 기관으로 변질됐으며 학교 서열화를 조장하고 일반고를 황폐화시킨다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폐지 반대론자들은 학교를 다양화해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하고, 자율적 교육과정 운영으로 학력 신장과 다양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자사고 폐지 문제에 대해 김달효 동아대 교육학과 교수가 찬성,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반대 논리를 펼쳤다.

찬성 교육의 다양화 충족 못해…학교 서열화·사회양극화 초래

입시기관으로 변질…공교육 정상화에 역행


[맞짱 토론] 진보교육감 당선 공약 자사고 폐지해야 하나
자율형 사립고는 이명박 정부가 고교평준화 정책을 폐지하고 학교선택제를 전면 시행하려다가 여의치 않자, 학교를 다양화하겠다며 본격적으로 시행한 정책이었다. 자사고의 본래 취지는 “건학이념에 따라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학교를 다양화해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학교교육을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 과연 지금의 자사고가 진정 교육과정의 다양성과 학교의 다양화를 추구하게 됐는가? 절대 그렇지 못하다. 학교의 서열화를 다양화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자사고는 입시전문기관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학교 서열화와 사회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자사고 같은 학교선택제의 여러 모델이 시행되고 있지만,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학교교육에서 학생의 개인적 차이보다는 계층과 관련된 강한 패턴이 작용하며, 사회적으로는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됐고, 학교교육 형태의 다양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적과 계층을 기준으로 한 학교 서열화를 강화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나라의 자사고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성적이 우수하고 사회 경제적 여력이 되는 사회적 강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정의를 위한 교육정책이 아니다. 또한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로 이어지는 학교 서열화를 조장해 사교육비 문제를 극대화하고 교육을 통한 사회계층의 세습화를 가속화한다. 그리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빠져나간 일반고에는 슬럼화 현상이 초래돼 공교육 정상화를 추구하는 데 상당한 애로사항을 유발한다.

자사고에 입학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학교선택권을 생각해선 안 된다. 그것을 통해 교육적·사회적 역효과가 상당하다면, 사회적 공익을 추구하기 위해 개인 선택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이 있더라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고교평준화가 학교선택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제소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린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맞짱 토론] 진보교육감 당선 공약 자사고 폐지해야 하나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면 사교육비 문제, 일반고 슬럼화 문제, 교육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 등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해 보편성을 추구하되 교육의 참된 질을 높이려 해야 한다.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핀란드의 경우 학생 및 학교의 경쟁을 강요하고 학교 서열화를 조장하는 학교가 있어서 달성된 것이 아니다. 학급규모(학급당 학생 수)의 감축을 통한 다채롭고 역동적인 수업, 입시와 암기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독서와 소통을 통한 사고력 함양 위주의 교육, 경쟁과 결과(성적)가 아니라 협동과 과정(성취)을 지향하는 교육, 인권과 존중의 가치를 중시하고 실천하려는 교장 및 교사의 리더십, 무상교육과 포용의 교육정책을 통한 평등의 가치 구현 등이 어우러진 것이 주요 원인이다.

교육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기회균등, 포용, 존중, 협동, 공동체 의식이라는 참된 가치가 조금이라도 더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가 이러한 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추구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모습도 좀 더 건전하며 활력 넘치며 사람 살아가는 사회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반대 자사高, 전체의 2.7% 불과…일반高 위기의 원인 아니다

무조건 폐지는 학생·학부모의 선택권 침해


[맞짱 토론] 진보교육감 당선 공약 자사고 폐지해야 하나
이번 6·4 교육감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의 압승이라는 선거 결과의 원인은 다양할 수 있지만, 앞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진보교육감이 내세운 공약으로 인해 4년 동안 학교현장에서 벌어질 혼란과 갈등이다.

자율형 사립고 폐지와 혁신학교 확대는 13명의 진보교육감 당선자의 색깔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약이다. 한마디로 수월성 교육에서 단순 평등교육으로 정책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자사고로 인해 일반고가 황폐화됐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진보교육감의 표현으로는 ‘특권교육’ ‘귀족교육’이 자사고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현재와 같이 모든 일반고가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이 자사고에 있다고까지 몰아가고 있다.

자사고의 뿌리는 김대중 정부 시절, 수월성 교육에 대한 일반 국민의 요구로 2000년 초에 생긴 자립형 사립고에 있다. 자사고는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사립학교를 대상으로 확대되면서 현재 전국에 49개가 있으며, 이 중에서 25개인 절반 정도가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서울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에 대한 요구는 늘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의 입시지옥과 사교육비 해소를 위해 1974년 고교평준화가 시작됐고, 글로벌 시대에 맞게 다양한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사고처럼 학교선택권 확대와 학교 다양화가 동시에 진행돼 왔다.

진보교육감의 주장대로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이 일반고의 위기를 극복해 줄 것인지도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일반고의 위기가 중학교 내신성적 50%에 속하는 학생들을 추첨으로 미리 선발해 학생 맞춤형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자사고에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무리가 있다. 전국의 고등학교 2300여개 중에서 단지 2.7%에 해당하는 학교만이 자사고에 속한다. 전체 65%의 일반고가 3% 정도의 자사고에 영향을 받아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현장에서 느끼는 일반고의 위기는 자사고 설립 이후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1990년대부터 지속됐으며, 최근에는 학생 10명 중 7~8명이 학원에 다니면서 일반고의 위기가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맞짱 토론] 진보교육감 당선 공약 자사고 폐지해야 하나
일반고를 비롯한 공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우수한 자사고를 없애기보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요구를 적극 반영하면서 교사에게 더 많은 열정을 요구하는 자사고의 학교운영 방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일부 자사고에서 운영상의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면 될 것이지, 단순히 자사고 모두를 없애게 되면 모든 피해는 자사고에 다니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갈 것이다. 더 나아가 평등교육이란 이름으로 모든 일반고를 외형상으로만 동일하게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면 현재의 일반고 하향 평준화가 급격히 진행돼 일반고 위기보다 더 심각한 일반고 추락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선진국에서 사립학교의 학생선발권과 자율적 운영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며, 미국의 차터스쿨처럼 우수학교의 모델이 공교육에서도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진보교육감들이 단순히 선거 승리에 도취돼 무리하게 자사고를 폐지하기보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앞서가는 학교는 더 잘하도록 지원하며 뒤처지는 학교는 우수학교 모델을 확산시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