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설명회 때 갈등 시작…공사 중단·재개 12차례 반복
주민 2명 자살, 수십명 연행 조사…희망버스 2차례 방문


11일 주민 농성장 강제 철거가 단행된 밀양 765㎸ 송전탑 건설 현장의 한전-주민 간 갈등은 9년 동안 계속됐다.

산업자원부가 2000년 1월 제5차 장기 전력수급계획을 발표하고 한전이 이 계획을 토대로 2001년 5월 765㎸ 신고리 원전-북경남 송전선로 경과지를 선정해 환경영향평가를 시작하면서 길고 긴 '전쟁'이 예고됐다.

한전은 4여 년 만에 환경영향평가를 완성하고 2005년 8월 밀양지역에서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이때부터 한전과 주민 간 갈등이 시작됐다.

주민 설명회 당시 초고압 송전탑이 마을 인근에 들어선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주민들 사이에 강한 반대 기류가 형성됐다.

이듬해인 2006년 반대 여론이 확산되면서 송전선로가 지나는 밀양시 청도·부북·상동·단장·산외 5개 면 주민이 연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주민의 반대 속에도 경과지 선정, 측량, 실시계획 승인을 거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8년 8월 765㎸ 송전탑과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 착공됐다.

하지만 이 사업은 원활하지 못했다.

주민이 송전탑 건설 계획의 백지화와 송전선로 경과지 변경, 지중화 등을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한전은 이 요구를 거부, 양측의 평행선은 이어졌다.

양측의 이런 갈등을 해결하려고 국민권익위원회, 경실련, 갈등조정위원회, 보상제도 개선추진 위원회, 전문가 협의체 등이 잇달아 운영됐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공사가 시작된 지 1년여 만에 주민들은 송전탑의 건강권 침해 등을 들며 국민권익위원회 이동 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에 따라 출범한 밀양지역 765㎸ 건설사업 갈등조정위원회는 6개월간 20여 차례 회의를 열어 제도개선 추진위 구성, 초전도케이블 포럼 개최 등 5개 항목에 의견 접근을 보았으나 합의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경실련이 주관한 보상제도 개선추진 위원회도 2010년 11월부터 1년간 10여 차례 회의를 열어 지속적 지역지원사업, 지가 하락 보상 등을 논의했으나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이 와중에 한전의 설득에 힘입어 2011년 10월 5개 면 가운데 청도면이 처음으로 보상안에 합의했다.

나머지 4개 면 주민의 반대는 여전했다.

접점을 찾으려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지난해 5월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 송전탑 건설을 기술적으로 검토하도록 했다.

이어 국회 산자위는 7월 전문가 협의체의 보고를 토대로 지중화, 우회송전 등에 관한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전과 반대 단체 및 주민들은 국회의 입장을 각각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 견해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반대 주민을 설득하려고 지난해 7월과 8월 초 3차례 밀양을 찾아 이·통장, 유림 대표 등과 대화를 나눴다.

윤 장관은 당시 여름휴가를 밀양에서 보내며 1천900여 가구에 송전탑 공사에 협조를 당부하는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지난해 9월 11일 밀양시청과 단장면·산외면사무소를 차례로 방문해 송전탑 건설의 불가피성과 당위성을 전달했다.

사실상 정부의 최후통첩이었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2일 송전탑 공사가 재개됐다.

한전과 밀양 주민의 오랜 갈등으로 2008년 8월 공사가 시작된 후 무수하게 중단사태를 빚다가 12번째 재개된 셈이었다.

그때 경찰은 한전의 공사를 보호하려고 20개 중대 2천여 명을 투입, 공권력의 과잉 행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그동안 모두 11차례나 공사가 재개됐다가 중단되는 일이 반복됐다.

2009년 7월 조해진 국회의원과 밀양시 요청으로 송전탑 현장의 벌목작업이 처음 중단된 것을 시작으로 그 해에만 3차례 공사 재개와 중단이 되풀이됐다.

2010년 1차례, 2011년 3차례 더 공사가 재개됐다가 중단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주민 2명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분신하거나 음독해 숨졌다.

2012년 1월 16일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주민 이치우 씨가 자신 소유의 논 가운데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다가 분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지나는 밀양시 상동면 주민 유한숙 씨는 지난해 12월 2일 자신의 집에서 농약을 마신 뒤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나흘 만에 숨졌다.

유씨 장례는 지금까지도 치러지지 않고 있다.

공사 진행 과정에서 경찰의 공권력 투입 등으로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이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가 다치고 통행을 저지당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주민 반대 대책위와 시민단체·야당은 인권 침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공사장 헬기 소음으로 주민 다수가 심한 불안과 우울 증세를 보였으며, 수십명이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10월 공사가 재개된 후 송전탑 반대 주민을 지원하는 '희망버스'가 두 차례 밀양을 방문했다.

희망버스를 타고 온 전국 시민·사회단체와 인권단체, 시민 등 2천여 명은 1박2일 일정으로 지난해 11월 30일과 올해 1월 25일 주민 농성장을 찾아 격려하고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송전탑 현장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인권단체 등 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는 밀양 주민을 도와 송전탑 반대 여론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고, 밀양시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와 주민들은 수차례 국회와 정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상경 투쟁을 벌였다.

송전탑 공사를 둘러싼 치열한 법정 공방도 이어졌다.

지난 4월에는 한전과 반대 주민이 신청한 송전탑 공사 중지 가처분과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행정 대집행 계고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에 대한 재판이 잇달아 열렸다.

법정에서 한전 측은 국가의 전력수급계획을 내세우며 송전탑 공사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주민 측은 한전의 환경영향평가법 위반 등을 지적하며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국민적 슬픔 속에서 농성장 철거를 2개월 가까이 미뤘던 밀양시와 경찰은 이날 행정 대집행을 결행했다.

행정 대집행에 이어 곧바로 한전은 그동안 미뤄뒀던 밀양시 부북면과 단장면, 상동면 송전탑 5기 공사를 부분적으로 재개했다.

이날 농성장 5곳 철거가 마무리되면 주민-한전 갈등 9년 만에 전 구간으로 송전탑 공사가 확대될 전망이다.

한전은 밀양지역 송전탑 52기 가운데 현재 30기(57.7%)를 완공했고 22기(42.3%)는 공사 중이거나 착공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보상의 경우 밀양지역 송전탑 경과지 30개 마을 가운데 93.3%인 28개 마을과 합의했다고 한전은 덧붙였다.

(밀양연합뉴스) 김영만 기자 ym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