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아직 입도 안 뗐는데!…공대 나온 해병대 출신 '상남자' 이 차장, 야단치려고 폼만 잡았는데…女후배 눈물에 쩔쩔
홍보대행사에 근무하는 김 과장은 이 대리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다. 해병대 출신인 김 과장과 미국 유학파인 이 대리는 서로 너무 다른 스타일이다. 이 대리가 보기에 김 과장은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는 꽉 막힌 사람’인 반면 김 과장은 이 대리가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게 못마땅하다.

‘직장 내 갈굼’의 기원에 대해선 유교의 ‘장유유서’ 전통이라는 둥, 남성들 대부분이 겪은 ‘군대문화’ 때문이라는 둥 의견이 분분하다. 선배들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적절히 후배를 잘 깨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조짐을 당할 때 후배들이 어떤 느낌을 받는지 모른다면 곤란하다.

오늘도 후배들은 선배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기 위해 표정 관리법, 변명하는 법 등의 비책을 연구한다. 김 과장, 이 대리의 ‘잘 갈구는 법’과 ‘잘 갈굼당하는 법’을 들어봤다.

◆편하게 하랬다고 진짜 편하게?

“선배, 업무 한두 번 해봐요? 잘 좀 다시 지시해 봐요.”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김 과장이 후배 조 대리에게 받은 메신저다. 김 과장은 후배들에게 ‘막말’을 권한다.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선 선배에게도 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일 잘하기로 소문난 조 대리는 때때로 애교 수준을 넘어서는 육두문자가 섞인 메시지도 보낸다. 김 과장이 요즘 자신의 결정을 조금씩 후회하고 있는 이유다.

“너 이것밖에 안돼? 다시 해.” 사내에서 ‘후배 잡는 호랑이’로 소문난 영업담당 김 차장이 욕을 먹지 않는 이유는 갈굼보다 더 큰 것을 준다는 데 있다. 사실 김 차장의 ‘전횡(?)’은 사내에 소문날 정도다. 휴일에도 업무와 관련한 문자를 보내고, 기획안은 차장 선에서 반려되기 일쑤다. 김 차장이 목표치를 자꾸 상향해 월말이면 곤죽이 된다.

그러나 김 차장의 평판은 좋은 편이다. 그렇게 들들 볶이면서도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건 김 차장 밑에서 1년만 있으면 사내에서 최고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갈굼도 행복하게 듣고 있서요. 엄한 것 같지만 목표치가 조금 모자란 직원들은 개인적으로 챙겨주기도 하세요. 요즘 말로 ‘츤데레’라고,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많은 캐릭터라고나 할까요.”

◆쑥맥인 게 문제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이 차장은 같은 부서의 여사원 김 대리를 혼내는 게 불편하다. 누나와 여동생이 없고 형만 둘인 이 차장은 전공도 이공계라 여성들과 함께 생활할 시간이 적었다. 여자 후배들이 제출한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들어 야단을 치려해도 막상 소리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여자 입사 동기에게 물어보니 여자 후배들은 두루뭉술하게 지적하기보다는 아주 정확하게 필요한 말만 해야 별탈이 없을 거라고 조언한다. “오후 3시에 내가 임원 보고를 해야 하는데, 그 전에 미리 초안을 보고 다시 한 번 다듬어야 하니 그래프와 문구를 얼른 수정해서 줘야 하지 않겠니”라는 식이라는 것. 이 차장은 “그냥 남자 후배들처럼 혼내고 난 뒤에 술 한 번 진탕 마시고 감정을 푸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전자회사에 다니는 김 과장도 여직원을 대하기가 어렵긴 마찬가지. 얼마 전 복도에서 우연히 여직원들끼리 나누던 대화를 듣고 큰 배신감을 느꼈다. ‘김 과장님은 결재 맡을 때나 휴가 쓸 때 그냥 콧소리 한 번 내면 ‘허허’하면서 무사통과라니깐?’ 여자 후배들 사이에서 그를 대하는 법이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김 과장은 마음을 다잡았다.

◆보고 비법, 상사의 심기를 살펴라

국내 H증권사 홍보부장 박씨는 사장 보고가 잡혀 있는 날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비서에게 “오늘 VIP 기분 어때?”라고 묻는 것. 물론 시급한 보고는 사장의 기분에 관계없이 한다. 그러나 시간 여유가 있는 보고는 그날 비서의 답변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 출근해서 웃고 계십니다”라고 하면 ‘사장 기분이 상할 만한 내용’의 보고서를 갖고 올라간다. 기왕지사 깨질 것, 기분이 좋을 때 보고하는 게 덜 혼나기 때문이다. 대신 사장 기분이 ‘나쁘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질 내용의 보고를 준비한다. 기분이 나쁠 때 ‘기쁨’을 주면 더 오래 기억된다는 건 인지상정이다. “사장 보고는 ‘전략’이 필수입니다. 눈치작전은 꼭 필요하죠.”

제조업체 기획팀에서 함께 근무하는 박 과장과 정 과장. 입사 시기나 나이는 비슷하지만 후배들이 보는 능력은 박 과장이 월등하다. 반면 정 과장은 시키는 일만 할 뿐 제대로 보여주는 성과가 없어 ‘있는 듯 없는 듯’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부장은 무슨 일만 생기면 박 과장부터 깨고 시작한다. 이유가 궁금해진 직원들은 한참 관찰한 끝에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를 찾았다. 박 과장은 무슨 일이든 자기 혼자, 완벽하게 진행하려고 애쓰는 반면 정 과장은 사소한 일도 부장에게 보고하고 상의해 깨질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 “상사에게 잘 의지하는 법도 중요한 것 같아요. 능력에 비해 승진을 잘하는 비결이겠죠.”

◆직접 말을 하라고요

대기업 전자계열사에서 일하는 A대리와 B대리는 최근 부장 때문에 스트레스다. 부장이 매일 “우리 부는 브리지(중간역할자)가 없어”라고 계속 중얼거려서다. 사실 부서엔 팀장급인 C차장이 있다. 그러나 팀에 온 지 한 해가 지났지만 적응을 못하고 있다. C차장이 중간에서 대리들의 보고서를 검토해주고 다시 업무 지시를 해주면 얼마나 업무가 수월해지겠냐는 게 부장 생각이다. 그러나 부장은 성격이 소심해 대놓고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 매번 업무가 안 풀릴 때마다 C차장 욕을 들으니 이제 부장을 보는 것 자체가 짜증스럽다.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김 대리는 요즘 부서 내 바로 윗 선배인 박 차장에게 불만이 쌓여있다. 평소 박 차장과 김 대리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지만 박 차장이 연말 승진에서 탈락하자 태도가 달라진 것. 화풀이로 업무를 지적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유를 알아서 많이 참고 있지만 깨지는 입장에선 짜증나죠. 박 차장 때문에 제 인사고과도 박해질지 걱정이네요.”

건설업체에 근무하는 김 과장은 요즘 부하 여직원인 박 대리 눈치를 본다. 얼마 전 퇴근 후 마트에 가던 박 대리가 김 과장이 유흥업소에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 “인간적으로 실망하긴 했는데, 저와 별 관계 없으니 신경 안 써요. 평소에 들들 볶던 김 과장님이 요즘 그러지 않아서 좋긴한데, 은근히 뒤끝이 있을까 불안하네요.”

김대훈/안정락/강현우/황정수/김은정/김동현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