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인 중지'가 뭐기에

경찰 1명이 30~40건씩 담당
수십억대 횡령사건 맡아도 관계자 한차례 조사하기 벅차
혐의 입증 어려운 경우 많아 '참고인 중지' 내세워 종결 처분
"공소시효 가뜩이나 짧은데…" 고소인들 분통만 터뜨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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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회사를 운영하던 A씨는 2012년 의료회사 K사를 약 30억원에 인수했다. A씨는 K사 인수 후 기존 경영진이 회사 자금 12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파악했다. 회사가 받은 투자금 중 일부를 무단 인출해 사적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A씨는 기존 경영진 B씨 등 3명을 작년 7월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해당 사건을 서울 송파경찰서로 내려 보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기존 경영진은 회사 자금을 사용한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은 이 사건을 지난해 10월 ‘참고인 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의 참고인을 찾을 수 없어 사실상 수사를 중단한 것이다. 참고인은 B씨가 회사를 운영하기 이전의 대표였다. A씨는 “피고소인이 혐의를 인정했는데도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참고인으로 지정하고, 참고인을 찾지 못하겠다며 수사를 중단한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 피의자에게 범죄 혐의가 있는지 판단하는 데 중요한 참고인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참고인 소환 조사가 이뤄질 때까지 수사를 잠정 중단하는 ‘참고인 중지 의견’이 경제사건에 두드러지고 있다.

사기·횡령·배임 등 경제사건의 특성상 다수의 참고인 조사가 필요하지만 수배와 달리 참고인 조사는 현실적으로 강제성이 없다. 여기에 사건을 담당하는 경제팀 경찰관 1명이 수십건의 사건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참고인 소환 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해 참고인 중지 의견이 늘어나는 것이다. 중요 참고인이 나타나기 전에는 수사를 재개하지 않아 참고인 중지 의견이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참고인 중지 의견 71%가 경제사건


회사원 C씨는 잘못된 정보로 주식투자를 했다 손해를 본 뒤 허위사실을 유포해 주식 시세를 조종한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로 2012년 해당 상장회사 대표를 고발했다. 사건을 맡은 인천의 한 일선경찰서는 해당 사건을 ‘참고인 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허위사실 유포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참고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참고인은 도주한 상태가 아니었다. C씨는 참고인의 소재를 확인해 수사 재개를 신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참고인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다시 참고인 중지 의견을 내렸다. C씨는 “참고인의 소재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수사를 축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참고인 중지 의견은 사건의 참고인, 고발인, 피고발인 등의 행적을 알 수 없을 때 일시적으로 수사를 중단하는 경찰의 송치 의견이다. 참고인의 소재가 파악되면 해당 사건은 수사를 재개한다. 하지만 수배가 떨어지는 기소 중지와 달리 참고인 중지는 강제성이 없어 한 번 이 의견으로 송치될 경우 사실상 미제 사건으로 남는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팀 리포트] 일손이 부족해서…사건이 복잡해서…경찰 캐비닛에서 먼지 쌓이는 경제범죄들

참고인 중지 의견은 경제사건에 집중되고 있다. 2012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참고인 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1만3011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 사기·횡령·배임 등 주요 경제범죄의 참고인 중지 의견은 8563건에 달했다. 전체 참고인 중지 의견 중 71%가 경제사건인 셈이다.

경제팀은 기피 부서

경제사건에서 참고인 중지 의견이 높은 이유는 일선경찰서 경제팀의 인력난과 직결된다. 일선경찰서 경제팀이 맡는 사건은 다양하다. 무전취식범은 물론 동원예비군 불참자도 경제팀 영역이다. 여기에 횡령·배임과 같은 전문 경제사건도 포함된다. 강남지역 일선경찰서 경제팀 수사관 1명이 한꺼번에 맡는 사건은 30~40건이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리는 전문 경제사건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선경찰서 경제팀 관계자는 “수당도 적은 편인 데다 담당 사건·사고는 다양하고 인력은 부족하다 보니 경제팀은 기피 부서가 됐다”며 “경제사건 전문성 강화 내부교육도 있지만 인력 부족으로 1년에 한 번 정도 교육을 받는 것이 전부”라고 토로했다.

횡령·배임은 피하고 싶은 사건으로 꼽힌다. 범죄 사실이 확실해도 공범과의 혐의 분담 여부 등을 조사해야 기소가 가능해 수사량이 다른 사건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제팀의 업무 과중은 오래 전부터 지적된 문제”라며 “우리나라의 고소·고발은 일본의 20배에 이를 정도로 남발되고 있어 횡령·배임 등 경제사건에 집중해 수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분통 터지는 고소인

고소인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진다. 횡령·배임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는 7년(업무상 횡령·배임 10년)으로 살인(25년), 방화(15년) 등에 비해 짧다. 하지만 참고인 중지 기간에도 공소시효는 정지되지 않는다. 사건 해결이 지지부진한 것을 떠나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기름 중간 유통상을 횡령 혐의로 고소했던 기업의 한 관계자는 “수십억원대 사건을 조사하면서 경찰이 고소인 조사와 피고소인 조사를 각각 한 번만 하고 말았다”며 “검찰이 네 차례 재수사를 지휘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일부 혐의는 공소시효를 넘겼다”고 한탄했다.

참고인 중지 의견을 경찰이 의도적으로 남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사건은 법률 자체가 어려워 사건에 대한 판단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일단 검찰에 떠넘기고 보자는 행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는 “배임 같은 사건의 경우 범죄 구성 요건을 충족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판사나 검사도 어려워하는 부분”이라며 “경찰 입장에서 증거 부족으로 단정지을 경우 로비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초동수사가 더 부실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주 지평지성 변호사는 “수사가 복잡하면 담당 경찰이 참고인의 소환 불응을 이유로 참고인 중지를 하면 수사 부담을 덜 수도 있다”며 “하지만 객관적 증거가 있는데도 소환 불응을 이유로 수사를 중지한다면 이는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 참고인 중지 결정

검사는 ‘검찰 사건 사무규칙’에 따라 참고인·고소인·고발인 또는 같은 사건 피의자의 소재가 불명확해 수사할 수 없으면 그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사건 수사를 중단하는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경찰도 같은 사안일 경우 ‘참고인 중지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다. 검찰과 경찰은 참고인 중지 결정 뒤에도 중지 사유 해소 여부를 수시로 검토해 수사를 마쳐야 한다.

김태호/이지훈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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