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해산심판 2차 변론기일서 참고인 격돌…RO-진보당 연관성 놓고 '대립'

18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정당해산심판 사건의 두 번째 변론기일에서는 법무부와 통합진보당이 각각 참고인으로 내세운 법률전문가들의 팽팽한 논리 대결이 펼쳐졌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바로 다음날 열린 변론이어서 법무부는 여세를 몰아가는 데 주력했고 진보당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진력했다.

◇"정당해산은 예방적 조치"…"구체적 위험성 검토해야" = 법무부 측 참고인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정당해산제도는 헌법 질서를 침해·파괴하려는 정당의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적 조치"라고 포문을 열었다.

김 교수는 "추상적 위험성만 가지고 부족하다는 견해가 있지만 구체적 위험성만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해산심판제도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라며 "목적이나 활동 중 하나만이라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난다면 정당해산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의 주심인 이정미 재판관이 구체적 실현 가능성이 없어도 해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묻자 김 교수는 남북 대치상황임을 지적하며 "생존을 위협하는 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위협이 현실화된다면 정당해산 심판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기준에 따르면 목적이 실현 불가능한 것이어도 정당해산이 가능하다"며 위헌적 목적만 있어도 해산이 가능하다고 힘을 보탰다.

장 교수는 "진보당의 위헌성을 판단하려면 숨겨진 목적까지 확인하고 목적과 활동을 연계해 판단해야 한다"면서 "공식적 의사결정을 통하지 않았더라도 당원 여럿이서 정당 성격에 부합하는 활동을 했다면 목적을 고려해 활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진보당 측 참고인으로 나선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유럽인권재판소 판례를 보면 '절박한 사회적 필요'가 있을 때만 정당을 해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구체적 위험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정당해산제도는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고안됐지만 악용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며 "예방적 차원의 해산까지 가능하게 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진보 정당에 대해 툭하면 이념 공세를 펼쳐 해산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더라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해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냐"는 강일원 재판관의 질문에 대해 정 교수는 "우리 안보 시스템이 그렇게 취약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송기춘 전북대 로스쿨 교수는 "정당해산제도는 정당의 존속을 보장하기 위한 의미도 가진다"며 "소수의 정치적 사상을 대변하는 정당을 해산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것에 대한 관용과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원칙에 따라 심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헌재의 정당해산결정에 대한 다른 구제 수단이 없다"며 신중한 판단을 요청했다.

◇RO 활동과 진보당 활동 같이 볼 수 있나 = 김상겸 교수는 진보당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구체적 근거로 ▲계급주의를 지향해 국민주권주의에 위반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원칙에 위배되며 ▲태극기와 애국가를 부정하는 등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이석기 의원의 당원 자격도 정지하지 않고 오히려 지원한 점 등 4가지를 들었다.

진보당이 내란음모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석기 의원을 오히려 지원한 것은 RO 활동이 곧 진보당 차원의 활동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법무부 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의견이다.

김 교수는 이어 "정당이 해산됐는데도 소속 의원들이 의정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제도의 목적과 취지에 반한다"며 정당해산과 의원직 상실은 같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도 "진보당의 전체적 흐름이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며 "다만 선을 넘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선을 넘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냐"는 김이수 재판관의 질문에 대해 "어제 1심 판결이 나왔지만 내란음모를 한 RO가 진보당과 조직적으로 연계돼 있는지, 진보당 활동으로 귀속되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일부나 개인의 일탈 행동이라면 판단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반면 정 교수는 "적기가만 불러도 처벌할 수 있는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과 국정원 체계가 갖춰진 곳에서 일부 개별 당원이 아닌 당 전체가 은밀히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면 급진 정당이 주장한 것들이 평범해지기도 한다"며 "독일도 녹색당의 급진적 정책을 이제는 집권당이 흡수했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노동자 권익보장 같은 진보 정당의 주장도 이제는 집권당에 많이 흡수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헌재가 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면 사상공세가 너무 쉽게 먹히는 우리 현실에서 진보 정당의 운신 폭이 그만큼 더 좁아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송 교수도 "법원 판결에 대해 헌재가 엄격한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서혜림 기자 eshin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