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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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울증을 앓았지만 치료받은 기록은 없다는데…. 주홍글씨 같은 흔적을 남기는 국내 여건이 비극을 초래했을 수도 있습니다.”

군 복무 중인 아이돌 가수 이특(31·본명 박정수)의 부친이 치매를 앓던 부모를 목졸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진 7일 서울 대형병원 신경정신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신과 치료를 꺼리는 사회적 편견 탓에 우울증이 방치되면서 인명 손실은 물론 사회·경제적 손실도 커지고 있다”며 “인식 전환과 함께 체계적인 치료체제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울증 환자, 7년 새 35% 증가


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2년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59만1276명으로 집계됐다. 국민 100명 중 한 명꼴로 2005년 43만5000명에 비해 7년 만에 35.9% 증가했다.

사회·경제적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날 2007년 7조3367억원이었던 우울증 및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2011년 10조3826억원으로 5년 새 41.5% 증가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우울증은 개인의 경제적 여건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가 나빠질수록 감정을 표출하기보다 안으로 삭이게 되고, 이런 심리가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우리 사회의 3대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는 입시·취업·노후불안이 심화되면서 우울증도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울증을 심화시키는 요인은 연령대별로 차이가 있다.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10대는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왕따’ △20~30대는 연애·취직 실패 등에 따른 좌절감 △40~50대 남성은 조기 은퇴나 실직으로 인한 상실감 △40~50대 여성은 폐경 및 자식들이 떠난 뒤 느끼는 ‘빈 둥지 증후군’ △60~70대는 경제적 빈곤과 외로움을 꼽았다.

우울증·자살 사회비용 10조 시대…年 60만명 진료 받는다

○현대판 ‘주홍글씨’…치료 중단 늘어

김어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외래 우울증 환자 3명 중 한 명꼴로 치료를 중단한다”며 “많은 환자들이 우울증을 종교생활이나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의지의 문제로 보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우울증도 뇌 기능의 이상 증세로 보고 치료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우울증 치료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정신과 질환명을 빼고 ‘상담’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새로운 건강보험 청구절차를 시행했다. 상담만 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기존의 정신과질환 청구코드(F코드) 대신 보건일반상담(Z코드)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 진료기록부상 진단명은 ‘상담’이 된다.

문제는 초진 환자에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우울증이나 정신분열병(조울병) 등은 장기치료가 불가피한데, 본인부담금을 할인받으려면 기존의 F코드를 다시 사용해야 하고 ‘흔적’이 남아 기피하는 환자가 많다는 게 의료계의 분석이다.

○우울증 환자 집중관리 시스템 갖춰야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가 24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자살자 3명 중 2명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하지만 우울증과 자살 방지에 대한 보건의료 체계는 미비하다. 한국자살예방협회의 조사 결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우울증 등으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 대한 관리 수준이 꼴찌로 평가됐다. 이민수 고려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의 정신건강센터를 통해 우울증 환자나 자살 시도자를 집중 관리해 자살자를 40%까지 줄였다”며 “한국도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우울증을 치밀하게 관리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를 공공기관·회사 등에서 감기 치료처럼 보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준혁/홍선표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