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수준의 연봉을 받는 미국의 화이트칼라들은 밤새워 일해도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다. 사진은 IBM 직원들의 근무 모습. 한경DB
일정 수준의 연봉을 받는 미국의 화이트칼라들은 밤새워 일해도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다. 사진은 IBM 직원들의 근무 모습. 한경DB
[미국서 확산되는 유연근무제] 연봉 2만弗이상 화이트칼라, 밤샘 근무도 연장근로수당 못 받아
미국에는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exemption·배제)’이란 독특한 제도가 있다. 일정 수준의 연봉을 받는 화이트칼라들은 공정근로기준법 적용에서 배제해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는 제도다. ‘화이트칼라 배제’에 해당하는 근로자들은 밤새워 일해도 잔업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IBM의 톰 바인즈 비즈니스사업부 부장은 “배제 대상 화이트칼라들은 매년 연봉계약 때 연간 업무량을 정하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길더라도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연장근로수당 지급 기준 명확

미국 공정근로기준법은 고위관리직 행정직 전문직 컴퓨터직 외근영업직으로서 임금소득이 주당 455달러(연봉 2만3660달러) 이상인 근로자와 연봉 10만달러 이상 고액연봉자를 화이트칼라 배제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블루칼라와 저임금(주당 455달러 이하) 화이트칼라들은 모두 연장근로수당 대상이다.

최석용 S&P 이사는 “미국의 화이트칼라는 대부분 배제 대상이며 근무시간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한다”며 “금요일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일을 해도 연장근로수당은 없지만 목표달성 때 충분한 보상이 주어져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화이트칼라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프로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미국 기업에서는 직책이나 타이틀보다 어떤 일을 하고 얼마를 버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 노동부는 2004년 공정근로기준법 개정 때 노동계 의견 등을 감안해 소득수준 하위 16.8%인 주당 455달러 이상을 배제 대상으로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확정했다. 배제 대상 근로자 비중은 산업·기업 규모별로 차이가 있지만 고액 연봉자가 많은 금융회사가 높은 편이다. 보험회사인 시그나의 경우 미국 내 3만1000여명 근로자 가운데 1만8000명(58%)이 배제 대상이다. 이 회사의 베드 프리얼 HR담당부장은 “배제 대상자들은 커리어를 추구하지만 배제 대상자가 아닌 근로자들은 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점심시간의 경우 배제 대상 직원은 별도 규정이 없고 배제 대상이 아닌 직원은 45분이 주어진다.

◆도입 배경은 기업부담 완화

배제 제도가 도입된 배경은 화이트칼라 업무의 경우 근무시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성과나 질을 측정하기 곤란하다는 점이다. 미 노동부가 저소득 근로자에게 1.5배의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에 부담을 주는 만큼 임금이 일정수준을 넘는 화이트칼라에 대해선 연장근로수당을 없애 기업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도 반영됐다.

뉴욕 럿거스대의 제임스 쿠니 경영대 교수는 “1938년 배제 제도 도입 때 기업 지원이라는 측면이 고려됐다”며 “이후 기업들은 연봉제 등을 통해 ‘배제’ 대상을 늘리는 등 노동법에 의한 보호를 최소화해 가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코넬대 경영대학 로즈마리 배트 교수는 “비서, 콜센터 직원 등 낮은 레벨의 화이트칼라들까지 배제 대상에 포함해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근로자는 노조 가입이 금지되고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하는데도 배제 대상으로 분류되는 것을 원하기도 한다. 쿠니 교수는 “배제 대상으로 분류돼 외부적으로 심리적 보상을 받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배제와 비배제를 구분하기가 모호한 경우도 많다. 하급 관리직의 경우 본인의 판단에 따른 독자적 결정권이 많지 않아 배제 대상 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뉴욕·펜실베이니아=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