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 사이에 재택근무 자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제 도입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코닝사 연구개발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근무하는 모습. 한경DB
미국 기업들 사이에 재택근무 자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제 도입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코닝사 연구개발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근무하는 모습. 한경DB
“재택근무를 택할 수 있어 회사를 옮겼다. 일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미국 보험회사 시그나의 펜실베이니아지사에서 근무하는 애미 워너 리크루팅팀장은 회사를 옮긴 이유로 재택근무를 꼽았다. 15명의 직원과 함께 인력채용 업무를 맡고 있는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고 했다. 아이가 어리다 보니 일을 하면서 돌볼 수 있는 직장을 원했고 결국 재택근무를 제시한 시그나를 택했다.

○직장선택 조건된 재택근무

시그나는 업무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해야 재택근무 자격을 준다. 시그나가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이유는 우수인재 유치와 함께 청년층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다. 베드 프리얼 인사부장은 “요즘 젊은이들은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출퇴근 때 2시간 이상 걸리면 미련 없이 ‘안 된다’고 얘기한다”며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고 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유연근무는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택 근무자의 성과도 높다. 시그나 성과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는 직원은 전체의 21%지만 재택근무자 중 최고등급자 비율은 25%로 더 높다.

이에 대해 프리얼 부장은 “집에서 근무하는 데 대해 감사하게 여기고 절약한 시간에 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라며 “성과가 나쁘면 재택근무 기회를 빼앗기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05년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이 회사에는 3만1000여명의 직원 중 22.5%인 7000명 정도가 풀타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이들은 상사와 만나지 않기 때문에 매니저들은 보이지 않는 직원들을 관리하는 기술에 대해 배운다. 전화를 통해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뉴저지주 루슨트테크놀로지에 다니는 한국계 김성준 연구원도 회사에 남은 가장 큰 이유로 재택근무를 들었다. 30년간 이곳에서 근무한 그는 “몇 년 전 뉴욕시에 있는 회사에서 스카우트를 제의했지만 재택근무 조건이 없어 거절했다”며 “유연근무 허용은 미국 기업에서 인재를 유치하고 붙잡아두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1주일에 2일 정도 회사로 출근한다. 연구원에 따라선 오전 10시 이전에 출근해 오후 3, 4시에 퇴근하기도 한다. 이 연구소에는 비행기로 몇 시간씩 걸리는 플로리다(1명), 캘리포니아(2명) 등에 거주하며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도 있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져

[미국서 확산되는 유연근무제] "생산성 높다"…시그나, 3만1000명 직원 중 7000명 재택근무
재택근무제가 확산되는 것은 무엇보다 기업성과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교통비를 들이지 않고 시간도 아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우수 인재를 영입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성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직장 이동이 잦은 미국에서 우수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는 전략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톰 바인즈 IBM 비즈니스사업부장은 “세계 6만5000여명의 IBM 근로자에게 업무만족도, 워크-라이프 밸런스 등을 조사한 결과 유연근무제 도입 이후 더 많은 직원이 IBM에 남겠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유연근무의 긍정적인 효과를 소개했다.

코닝사 연구개발센터 실험실에 근무하는 샤리 코발 연구원은 자율출퇴근제를 이용, 오전 5시에 출근하고 오후 2시에 퇴근한다. 투잡 우먼인 그는 퇴근 후 기치료 사업을 위해 남보다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한다.

미국 인사관리협회인 월드앳워크 조사 결과 미국 기업의 풀타임 원격근무(재택근무 등 회사밖 근무) 도입 비율은 2013년 기준 34%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업종별로는 컨설팅 및 전문기술서비스업이 37%로 도입률이 가장 높고 제조업과 금융업이 각각 33%였다.

뉴욕·펜실베이니아=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