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측이 제품을 강제로 공급하는 이른바 ‘밀어내기’로 피해를 본 남양유업 대리점주에게 회사가 피해액 전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비슷한 소송이 많았지만 사측에 전액 배상 책임을 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조계는 박근혜 정부 들어 경제민주화 분위기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밀어내기 관련 소송에서 대리점주의 손을 들어준 첫 판결이 나온 만큼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피해 전액 배상하라”

오규희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 판사는 남양유업 대리점주 박모씨(33)가 “제품 강매 등으로 손해를 입은 2086만원을 돌려달라”며 남양유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가 실제 주문을 넘어서는 이른바 밀어내기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해 원고가 이를 처분하지 못하고 폐기하는 손해를 입게 됐다”며 “남양유업은 박씨에게 2086만원을 모두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2011년 남양유업과 대리점 계약을 맺은 박씨는 지난해 7월 밀어내기를 당했다. 남양유업은 박씨가 주문한 648만원어치의 세 배 수준인 1934만원어치의 제품을 떠넘겼고, 박씨는 초과 물량의 대부분을 팔지 못하고 폐기했다.

박씨는 지난해 7월 말 대리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으나 사측으로부터 장비 보증금 등 환급액 800만원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박씨는 정산금과 함께 밀어내기로 피해를 본 1286만원 등 2086만원을 돌려달라고 남양유업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초과 공급량이 박씨 주장보다는 적다”는 남양유업 측의 주장도 사측의 입증 미비를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 판사는 “손해액 산정을 위한 기초 자료가 피고인 남양유업에 편중돼 있다”며 “남양유업은 형식적 입증 책임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증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법원의 조치에 성실히 답변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남양유업에 전산 발주 프로그램인 ‘팜스21’에 기록된 정확한 주문량과 공급 내역을 제출하라고 명령했으나 사측은 “프로그램을 최근 폐기했다”며 박씨 측에 입증 책임을 떠넘겼다.

팜스21은 대리점 측이 최초 주문량을 볼 수 없게 설계돼 대리점주들로부터 그동안 회사 측의 밀어내기에 악용됐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다른 재판에도 영향 미칠 듯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박근혜 정부 들어 거세진 경제민주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밀어내기와 관련한 소송에서는 피해액의 20~30%만 사측 책임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재판부가 피해 입증 책임을 대리점주가 아닌 사측에 물은 것도 앞으로 기업 측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번 판결로 밀어내기와 관련한 다른 소송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LG유플러스 대리점주 7명은 회사 측이 판매 목표를 강제해 손해를 입었다며 회사를 상대로 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빙그레도 대리점주에 대한 제품 강매 혐의로 1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려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추가적인 집단 소송 움직임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향후 항소심에서 기업의 배상 책임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대리점주가 밀어내기 물량을 받더라도 이 가운데 70~80%는 다른 경로로 처리하기 때문에 100% 손실을 입는 것은 아니다”며 “사회적 분위기 등을 감안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람/최만수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