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도구, 살해 흔적 완벽에 가깝게 은폐

'완전범죄'
범인이 범행의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이나 사실을 전혀 남기지 않아 자기의 범행 사실을 완전하게 숨김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를 말한다.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피의자 정모(29)씨 또한 완전범죄를 꿈꾼 범죄자다.

정씨는 지난달 11일 자신의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초기화해 검색기록과 통화기록을 없애버렸다.

어머니 김모(58)씨와 형(32)을 살해하기 불과 이틀 전의 일이다.

경찰이 복원한 정씨의 컴퓨터 기록에는 '가족 간 자동차 명의 이전', '등기 서류', '뉴질랜드 화폐 환전' 등의 단어로 검색한 흔적이 남았다.

범행 후 어머니 소유의 원룸 건물과 형 소유의 외제 차 등을 자신의 소유로 바꾸기 위해 관련 정보를 검색했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정씨는 살해와 관련한 흔적도 완벽하게 없앴다.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장소로 추정되는 어머니 김씨의 집에서는 혈흔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의 혈흔채취 시약을 무력화할 수 있는 세척제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씨는 시신을 유기하기 위해 강원도와 경북을 다녀오면서도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시신 유기 당시 이용했던 차량의 내비게이션 장치와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없앴고 고속도로 요금소를 통과할 땐 하이패스 단말기가 있어도 일반 차로를 이용했다.

차량의 이동 경로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

정씨는 당시 다급한 상황에서도 어머니와 형의 시신을 각각 강원도 정선과 경북 울진에 분산 유기했다.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시신을 따로따로 유기한 것이다.

정씨는 이처럼 범행에 사용한 도구와 범행 흔적을 모두 없앤 뒤 지난달 16일 어머니가 실종됐다며 태연하게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을 유기하고 집에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범행 도구와 흔적을 모두 없앤 정씨의 용의주도함 때문에 경찰 수사는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천에서 내로라하는 강력형사를 60명이나 불러모아 수사본부를 차리고 연인원 5천100명을 동원, 시신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한 달 넘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완전범죄로 끝날 것 같았던 사건은 정씨의 부인 김모(29)씨가 경찰에 시신 유기장소를 털어놓아 지난 23일 실종자 시신을 발견하면서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정씨도 어머니 시신이 발견되자 결국 무너져내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형의 시신 유기장소를 경찰에 털어놓았다.

정씨는 지난 18일 자택에서 자살을 기도한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죄책감 때문에 그랬다"며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미 어머니와 형은 자신의 손에 처참하게 살해된 뒤였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범으로 지목돼 경찰 조사를 받던 부인 김씨마저 지난 25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도박빚 8천만원 때문에 비롯된 범죄는 어머니와 형에 이어 아내까지 앗아가며 정씨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정씨에게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상속인에서 제외된다는 민법에 따라 어머니 재산도 상속받을 수 없다.

정씨에게 남은 것은 법의 심판뿐이다.

형법에는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