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형제 간 다툼 국민에 실망"…대리인에 화해 설득 주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남긴 차명재산을 두고 장남 이맹희씨와 삼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벌인 상속소송의 항소심 심리가 27일 시작됐다.

양측이 첫 변론기일부터 한 치 양보 없는 설전을 벌이자 재판부는 대리인들에게 반드시 재판으로 판가름하려 하지 말고 형제 사이에 화해하도록 설득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서울고법 민사14부(윤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서 이맹희씨 측 대리인은 "선대회장의 장남인 원고는 상속인으로서 고유 권리를 갖는다"며 이건희 회장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건희 회장 측 대리인은 "선대회장이 타개하기 오래전부터 피고를 후계자로 정해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주식을 단독 상속하도록 했다"며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거나 각하해달라고 호소했다.

쟁점은 1심에서 다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맹희씨는 이건희 회장이 상속재산 분할 협의나 선친의 유언 없이 삼성생명·삼성전자 주식 등 차명재산을 독차지해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 상속인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건희 회장은 자신이 정당하게 재산을 물려받았고, 이맹희씨의 소송 제기가 너무 늦어 소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입장이다.

1심은 이 회장의 주장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회장은 항소심에서 이맹희씨가 4조849억원에 달했던 청구금액을 300분의 1로 줄여 항소한 것에 대해 "소송물을 특정하지 않아 우리도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항소권 남용이다"는 주장을 추가했다.

양측은 이날 감정 섞인 변론을 주고받아 눈길을 끌었다.

이맹희씨 측은 "이건희 회장이 차명으로 관리되던 재산을 몰래 차지했다.

소송에서 이겨 장자로서 더 늦기 전에 가문의 영을 세우고 정당한 권리를 확인받겠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 측은 "이맹희씨의 주장은 선대회장의 유지에 명백히 반해 정당성이 없다.

삼성그룹 경영에 관여했던 이씨는 이같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변론을 들은 재판부는 "형제 간의 다툼은 국민에게 실망을 준다.

재판 중이라도 화해하도록 설득해 국민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판은 오는 10월 1일 오전 10시에 속행된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