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 내 기획재정부 주차장. 지상에 가로주차(주차구역 앞에 가로로 차를 세우는 것)된 차량 3대가 연쇄적으로 밀리며 주차라인 안에 정상 주차된 승용차에 부딪치는 사고가 났다. 누군가 차를 빼기 위해 가로주차된 미니밴을 밀었는데 이 차량이 멈추지 않고 계속 구르면서 ‘3중 추돌’ 사고를 낸 것. 사고 차량 가운데 일부는 범퍼가 움푹 파이는 등 차체가 심하게 훼손됐다.

지난 6월엔 가로주차된 차량이 저절로 10m 넘게 굴러 지하주차장 벽면에 처박히는 아찔한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만약 그 순간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차량이 있었다면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기재부 주차장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차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곳곳에 가로주차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면이 겉보기엔 평평하지만 실제로는 미세하게 경사가 져 있다는 것. 누군가 조금만 밀어도 차량이 멈추지 않고 계속 구르는 데다 심지어 차량이 저절로 움직이기도 한다.

차량이 밀릴 때면 가속도가 붙기 때문에 어른 두세 명이 막아도 멈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부 방문객 중에선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심코 가로주차를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세종청사관리사무소는 사고 위험을 알리는 안내문 하나 붙여놓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기재부뿐 아니다. 총리실, 국토교통부 등 전체 6개 부처가 입주해 있는 세종청사 전체가 극심한 주차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평일에는 오전 8시30분만 넘어도 차 댈 곳을 찾지 못해 주차장 인근을 빙빙 도는 ‘주차 전쟁’이 벌어진다. ‘주차 금지’ 팻말 바로 옆에 버젓이 차를 대는 공무원들도 비일비재하다.

‘청사 전체가 불법 주차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청사관리소는 한동안 주차구역 밖에 세워진 차량에 노란색 경고 딱지를 붙였다. 하지만 “차 댈 곳도 마련해주지 않고 딱지만 붙이면 어떡하느냐”는 반발이 일자 지금은 붙이는 시늉만 한다.

세종청사 주차난은 ‘차 없는 친환경도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오판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당초 자전거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활성화해 공무원들이 차 없이 출퇴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짰다. 그래서 올해만 6000명 가까운 공무원이 근무하는데도 처음에 주차공간을 1400대분 정도밖에 확보하지 않았다. 지하주차장도 한 개 층밖에 안 팠다.

하지만 올해 초 공무원들의 청사 출근이 본격화되자마자 이 같은 계획은 탁상공론임이 드러났다. 열악한 대중교통 탓에 공무원 상당수가 승용차로 출퇴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A과장은 “공무원들이 많이 사는 대전 노은이나 조치원, 오송, 대평리는 물론 청사에서 제일 가까운 첫마을아파트에서도 차가 없으면 출퇴근이 불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전행정부는 뒤늦게 옥외주차장 7곳을 지어 세종청사 주차 가능대수를 총 3000대가량으로 늘렸지만 주차난 해소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내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현재 서울이나 과천에 있는 6개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한다. 세종시 근무 공무원은 1만명을 넘어선다. 주차난이 지금보다 악화될 게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청사에서 가까운 첫마을아파트 일대도 주차난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점심이나 저녁식사 시간대에는 공무원들은 물론 청사나 아파트 공사 현장 인부들까지 몰리면서 2차선 도로 양쪽 전체가 노상주차장으로 변한다. 식당을 찾으러 가려면 그 틈을 비집고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해야 한다.

세종=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