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신축 허가를 둘러싸고 서울남부교육청과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 당산동 비즈니스호텔 투시도.  /한경DB
호텔 신축 허가를 둘러싸고 서울남부교육청과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 당산동 비즈니스호텔 투시도. /한경DB
최근 서울에서 호텔 신축 허가를 둘러싸고 잇따라 발생하는 교육청과 개발업체 간 분쟁의 원인은 호텔을 ‘학교 주변 유해시설’로 취급하는 ‘학교보건법’ 조항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30여년 전 제정된 법의 잣대가 그동안 급격히 발전한 관광산업 실상을 반영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현행 규정에는 숙박시설의 경우 ‘학교 주변 50m 이내’인 절대적 정화구역에는 절대 불허이고, 50m 초과~200m 이내 ‘상대정화구역’에서는 관할 교육청의 재량에 맡긴다. 숙박시설이란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항상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관광호텔과 비즈니스호텔 등 대형 호텔이 청소년 유해시설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심형석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학교 인근 숙박시설(건물)의 경우 건물 자체를 유해시설로 규정하기보다 해당 건물 내에 들어서는 부대영업장에 대한 제한을 두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경복궁 인근인 송현동 옛 주한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에 호텔 등 복합문화단지 건설을 추진 중인 대한항공은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 내의 금지시설로 호텔을 규정한 학교보건법 6조는 위헌”이라며 작년 8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서울중부교육청이 해당 부지가 풍문여고 덕성여고 등과 가깝다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 부지의 경우 풍문여고·덕성여고 등과 5~11m 정도 떨어져 있다. 대한항공 측은 “호텔이 실제로 학생들의 위생이나 면학환경에 해를 끼치는지 판단할 여지 없이 무조건 금지하는 법조항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호텔 여관 여인숙을 금지시설로 분류한 학교보건법 6조의 경우 1981년 개정되면서 추가된 조항이다. 당시 호텔을 이용하는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 속칭 ‘기생관광’으로 불리는 성매매가 빈발하면서 사회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호텔 지하에는 유흥주점과 카지노 등의 청소년 유해업소도 적지 않게 들어섰다.

하지만 최근 호텔 운영은 30여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여러 계층의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한 데다 이들을 수용하는 호텔 종류도 비즈니스, 유스호스텔 등으로 다양화됐다는 것이다. 또 이들 호텔에는 통상 유흥주점이나 도박장 같은 업소가 들어서지 않는다.

갈등이 심화되자 정부도 올해 유흥주점과 도박장 같은 시설만 없으면 학교 주변 반경 50~200m의 ‘상대적 정화구역’에선 교육청 심의 없이도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야당의원들의 반대로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법은 특정 기업(대한항공)이 호텔을 짓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서울 시내에 객실이 부족해 외국인 관광객이 먼 곳에서 자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관광하고 가는 일이 계속된다”며 조속한 법 통과를 호소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