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우기에는 공사중단 법제화…매뉴얼 제작 필요"

지난 15일 서울 노량진동 상수도관 공사현장의 수몰사고를 계기로 공사 현장의 체계적인 안전 관리 매뉴얼 '부재(不在)'가 문제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16일 서울시와 시공·감리사 등 공사 현장 관계자들의 증언 등에 따르면 이번 공사 때도 서울시와 자치구에서 마련한 별도 지침은 없었고 시공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안전 수칙만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가까운 댐이나 교량의 수위가 높아지면 작업을 멈추라는 기본적인 수방계획은 있지만 강수량·한강수위 등과 관련해 별도의 세부 지침은 내려 보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공사의 감리사인 ㈜건화는 서울시의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지난 5월께 하도급 업체인 동아지질에 세부 매뉴얼을 작성하도록 했다.

이에 동아지질은 시공사인 천호건설에 매뉴얼을 보고하고 천호건설은 다시 감리사에 최종본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든 매뉴얼은 '허점' 투성이였다.

㈜건화의 이명근 감리단장이 이날 현장 브리핑에서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팔당댐 방류량과 수도권 강수량을 육안으로 확인했지만, 작업 중단 여부의 가장 큰 기준은 가까운 한강대교 남단의 수위였다"면서 "수위가 6.8m 이상이면 작업을 중단키로 했다"고 말했다.

한강대교 남단 수위가 작업 중단의 사실상 유일한 기준이었던 셈이다.

더욱이 한강대교 남단 수위 판단도 상부기관에서 유선으로 통보받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서울시 홈페이지에 뜨는 자료로 확인해 판단했다고 한다.

자체적인 지침이다 보니 관리자의 상황 파악도 마음대로 이뤄지고 전달 체계 역시 확실하지 않아 큰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강대교 남단 수위에 의존한 매뉴얼이었던 탓에 닷새째 폭우가 지속했던 강원도와 경기 북부의 강수량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사고 당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됐던 팔당댐 방류 사실조차 확인 못한 채 공사를 강행하는 '악수'를 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와 25개 자치구가 나서 공통된 안전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명배 한국안전시민연합 상임대표는 "우기에 공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 안전불감증"이라면서 "시청과 구청 역시 이런 기간에 공사를 허가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고 지금이라도 우기에는 공사를 전면 중단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li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