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3) 기적의 명암법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수태고지’(1475, 목판 위에 유채, 시칠리아  팔레르모미술관)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수태고지’(1475, 목판 위에 유채, 시칠리아  팔레르모미술관)

어두운 실내에서 한 매혹적인 여인이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 푸른색 미사보를 쓴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실내에서 성경을 읽고 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의 표정에 동요의 감정이 읽힌다. 그는 아마도 얘기치 않은 존재와 맞닥뜨린 것 같다. 그 놀라움은 상대편을 제지하는 듯한 오른손과 미사보의 끝단을 여미는 왼손의 제스처에서도 잘 드러난다.

마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듯한 이 그림은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1430~1479)의 ‘수태고지’(1475)라는 작품이다. 하느님이 성모 마리아에게 대천사 미카엘을 보내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 수태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따라서 책을 읽고 있던 여인은 성모 마리아이고, 그가 놀라는 것은 날개 달린 천사의 갑작스러운 출현 때문이라는 점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 그림이 주는 인상은 매우 사실적이라는 점이다. 서양에서는 그리스시대 철학자 플라톤이 ‘예술은 자연의 모방(Mimesis)’이라고 주장한 이래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미술 창작의 제1원리로 여겨왔다. 이로부터 형태의 아름다움은 사실성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됐다.

그렇다면 그림에서 어떻게 하면 형태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명암법, 원근법, 선과 색채, 구성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중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명암법이다. 특히 사람의 얼굴을 묘사할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명암법 이용해 입체감 만드는 원리 < 명암법은 일정한 방향에서 비추는 빛을 전제로 한다. 보통 초상화에서 빛은 왼쪽 또는 오른쪽 측면에서 비치게 된다. 빛을 정면보다 측면에서 투사할 때 사람의 윤곽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태고지’에서 빛은 성모 마리아의 오른쪽에서 투사되고 있다. 그래서 성모의 얼굴은 빛을 직접적으로 받는 오른쪽(관람객의 방향에서는 왼쪽)은 눈부시게 밝고 빛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왼쪽 얼굴은 좀 더 어둡다. 특히 오뚝한 콧날 바로 왼쪽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고, 이마에는 미사포의 그림자가 뚜렷하다. 이렇게 어두운 공간 속에서 춤추는 빛의 추이를 그대로 평면 속에 재현함으로써 3차원적 입체감이 만들어진다. >

서기 79년 베수비오화산의 폭발로 매몰됐다 발굴된 이탈리아 폼페이유적지의 로마시대 벽화로 판단하건대 대상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는 이미 고대부터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대의 입체감을 내는 방법은 르네상스시대 이후 정립된 명암법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이때도 빛의 존재를 인식했지만 그것을 재현하는 데 있어 일관성이 떨어진다. 화가는 그저 대상을 입체적으로 보이려고 할 뿐 정확하게 빛의 움직임을 논리적으로 포착하지는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보다 엄정한 과학정신과 합리주의가 명암법이라는 마술 같은 테크닉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실재하는 대상이야 문제가 없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성서 속의 기적 같은 에피소드라든가 오랜 옛날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은 대체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르네상스의 사실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수태고지’는 그런 물음에 대한 르네상스 화가들의 화답이다. 화가들은 현실에서 그 대체수단을 찾았다. 성모를 정숙하고 아리따운 실제 여인을 모델로 삼아 묘사한 것이다. 그래서 여인은 마치 이웃에서 우연히 지나친 아름다운 여인처럼 다가온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성서의 에피소드와 역사적 사실을 화가가 임의로 재구성한 것이다.

때로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화가들도 있었다. 라파엘로는 자기 애인을 모델로 해 수많은 마리아상을 그렸고, 카라바조는 창녀를 모델로 삼아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모두 기적의 명암법이 초래한 부작용이었다.

[CEO를 위한 미술산책] 3차원 현실, 화폭에 완벽 재현…르네상스가 만든 빛의 마법

그래서일까. ‘수태고지’의 성모는 신앙심을 자아내는 초월자기보다 매혹적인 현실의 미인으로 다가온다.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며 관객을 향해 내민 저 섬섬옥수를 보라. 그 아름다운 손은 관객으로 하여금 붙들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만큼 매혹적이다. 명암법의 발명은 원근법과 함께 이미지에 생명을 불어넣은 회화의 혁명이었다.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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