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어케이블에 문제 있다는 소문 퍼져 중간 간부가 결정 못해"

검찰의 원전비리 수사가 한국수력원자력의 고위층을 정조준했다.

JS전선이 2008년부터 신고리 1·2호기 등에 납품한 제어케이블의 시험 성적서 위조가 한수원 중간간부의 지시로 이뤄진 게 드러난데다 이 같은 결정에 윗선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판단에서다.

검찰은 20일 한수원 본사와 고리·월성원자력본부 등 사무실 4곳과 한수원의 전·현직 임직원 자택 등 모두 9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전·현직 임직원은 이날 한국전력기술에 위조된 제어케이블 시험 성적서 승인을 지시한 혐의(사기 등)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한수원 송모(58) 부장과 황모(46) 차장의 당시 지휘라인에 있던 '윗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송 부장 등은 검찰에서 "납품 시한이 임박해 어쩔 수 없이 시험 성적서를 승인해주도록 했다"면서 "윗선의 묵인이나 지시는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시 한수원 내부에 JS전선 제어케이블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에 송 부장 윗선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제어케이블 시험 성적서 위조와 승인을 중간 간부가 결정했다는 것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에서 제어케이블의 계약체결, 성능검증, 승인, 납품, 출고 등과 관련한 방대한 서류와 컴퓨터 파일, 회계 장부, 이메일 등을 확보했다.

결국 제어케이블 납품과 관련한 전체 과정을 샅샅이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문제의 부품이 계약부터 납품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검찰의 시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검찰은 특히 JS전선이 제어케이블에 대한 시험에서 두 차례나 실패한 직후인 2004년 7월 같은 제품으로 한수원과 무려 55억원어치의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또 통상 50일가량 걸리는 제어케이블 시험 성적서 승인이 불과 14일 만에 이뤄진 경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이 지난 19일 벌인 JS전선에 대한 제2차 압수수색 등을 통해 제어케이블 납품에 한수원 고위층이 연루됐다는 단서를 일부 포착했다는 얘기도 검찰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youngky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