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고 후 미조치 혐의 적용 대상 아니다"

"음주운전하다가 사고내면 줄행랑이 상책?"

검찰이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순찰차를 보고 달아난 공무원을 무혐의 처분해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광주지검 목포지청에 따르면 검찰은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입건된 전남도청 5급 공무원 장모씨를 최근 무혐의 처분했다.

장씨는 지난 3월 5일 오후 11시 30분께 목포시 상동 한 도로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맞은 편 차량과 접촉사고를 내고 달아난 혐의를 받았다.

장씨는 상대방 차량 운전자와 사고처리 방안을 논의하다가 파출소 순찰차가 출동하자 현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술이 깨고도 남을 시각인 이튿날 오후 3시께 경찰에 자진 출석했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는 측정되지 않았다.

경찰은 통신수사까지 벌여 사고 당일 장씨의 동선을 파악하고 음주량을 조사했다.

수소문 끝에 알아낸 술집 주인은 "모른다"고, 함께 마신 지인들은 "(장씨가)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씨도 "조금 마셨을 뿐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왜 도망갔느냐"는 질문에 장씨는 "현장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처벌 기준 이상의 음주사실을 입증하지 못한 경찰은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장씨가 현장을 떠난 점에 주목해 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기소 의견을 붙여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경찰의 의견은 검찰에서 묵살됐다.

검찰은 무죄 판결을 예단해 장씨를 재판에 부치지 않았다.

목포지청의 한 관계자는 "사고 후 미조치 관련 규정은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것이 아니고 도로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목적"이라며 "사고로 인한 비산물(파편)도 없었고 피해자가 추격도 하지 않아 도로상의 혼란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행위 자체는 좋지 않다"면서도 "판례를 봐도 이런 경우 무죄가 나온 사례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에서 사고 후 미조치죄를 인정한 대법원(1993년 11월 26일) 판례도 있다.

접촉사고 후 피해변제금 1만원을 주려 했지만 피해자가 이를 거절하면서 인근 파출소로 갈 것을 요구하자 도주한 피고인에 대해 대법원은 사고 후 미조치죄를 인정했다.

당시 사건에서도 비산물이 없을 만큼 사고가 가벼웠고 피고인은 음주 사실이 발각될까봐 도주했다.

이와 별도로 피해자가 도주한 가해자를 쫓다가 교통혼잡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 사고 후 미조치죄를 인정해야한다는 취지의 판례도 있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은 부적절한 가이드라인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음주운전 중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을 경우 명함만 건네주고 현장을 벗어나도록 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음주운전을 들키지 않으려고 운전자들이 사고 후 현장을 벗어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이런 경우 일단 음주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입증이나 사고 후 미조치 혐의를 적용하는 게 어렵다면 안전운전 의무 위반 혐의 적용도 검토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목포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sangwon7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