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 보호벽 설치 지지부진, 미온적 처벌도 원인

생계를 위해 택시를 몰기 시작한 서모(67)씨는 최근 발생한 사건으로 10개월 만에 운전대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4월 8일 새벽, 50대 취객을 태우고 울산 시내를 운행할 때였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는데 승객은 뒷좌석에 누워 있었다.

신호대기 중이던 서씨가 뒤를 돌아보며 "누워 계십니까"라고 묻는 순간 갑자기 눈가가 뜨끔했다.

승객이 손에 쥔 휴대전화로 때린 것이다.

택시 내부 CCTV를 보면 머리가 반대로 튕기는 게 확인될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폭행은 택시 밖에서도 이어졌다.

도망치려는 승객을 붙잡는 과정에서 서씨는 몇 차례 더 폭행을 당했다.

이후 승객은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으로 형사 입건됐으나, 아직 서씨는 이 승객과 합의를 하지 못해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서씨는 "동공의 기능에 문제가 생겨 앞을 보는데 불편함이 크다"면서 "당장 아픈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일을 못하게 돼 걱정이다"고 말했다.

술에 취한 승객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택시기사들의 수난이 반복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예방이나 사후대책은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택시기사들은 밤마다 취객과 벌이는 시비와 승강이로 피해가 적지 않다고 호소하고 있다.

31일 한 법인택시 간부는 "전부 경찰에 신고되지는 않지만, 심야에 일하는 기사는 보통 1∼2명의 취객 때문에 문제에 휘말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 유형도 다양하다.

깊은 잠에 빠지거나 반말·욕설을 하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시비부터 걸거나 잠을 깨운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는 승객을 심심찮게 만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은 성추행 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문제를 방지할 만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데 있다.

운전자 폭행은 2차 교통사고로 연결돼 불특정 다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이유로 처벌 수위가 높다.

일반 폭행이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형이지만, 운전자 폭행은 5년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상습범이 아닌 이상 벌금 100만원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운전자 폭행에 대한 경각심이 낮고, 결국 범죄를 줄이기 위한 징벌적 조치로서의 효과도 낮다는 분석이다.

운전자 폭행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추진 중인 '운전석 보호벽 설치'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시내버스와 마찬가지로 택시 운전석에 보호격벽을 설치하도록 하는 '택시산업 발전 종합대책안'을 마련, 4월까지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5월 말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택시기사들이 신고를 꺼리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조사를 위해 경찰에 불려다니면 생업에 지장이 있고, 신고를 한다고 마땅한 보상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합의가 안 되면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방법뿐인데 비용, 시간, 수고스러움을 고려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순영 대진택시 노조위원장은 "운전자는 물론 승객도 보호받을 수 있는 보호격벽 설치가 빨리 추진돼야 한다"면서 "운전자뿐 아니라 주변의 운전자와 보행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운전자 폭행에 대해 엄격한 법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hk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