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불감증·다단계 하도급 등 문제 재부상
각계 대책 논의 분주…"논의만 말고 원칙부터 돌아봐야"

전남 여수의 대림산업 화학공장에서 야간 작업 중 일어난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은 근로자 6명의 장례식이 19일 엄수됐다.

부상자 11명 중에도 위중한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번 사고는 1989년 럭키화학 폭발사고(16명 사망·17명 부상), 2000년 호성케멕스 폭발사고(7명 사망·18명 부상)에 이은 여수 국가산업단지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화약고'라 불리는 여수산단의 안전관리 대책을 촉구하는 각계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지난 수십년 간 논의가 없어서 사고가 반복된 것은 아니라며 '반짝 관심'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안전 불감증이 낳은 후진국형 참사 = 공사나 건설 현장의 '빨리빨리' 관행은 후진국형 참사를 낳았다.

대림산업은 지난 12일부터 가동을 멈추고 정비 보수작업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사고일인 14일은 사실상 첫 작업 일이었고 근로자들은 첫날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장근무를 하다가 오후 8시 50분께 사고를 당했다.

폭발 원인이 폴리에틸렌 중간 제품 저장시설인 사일로 안에 있던 가스냐 분진이냐를 놓고 사측을 중심으로 공방하고 있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책임 떠넘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사이 안전 불감증의 징후들은 속속 드러났다.

분진 등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물청소는 이뤄지지 않았고 폭발을 가져온 용접작업의 승인도 없었다.

근로자들이 임의로 용접을 강행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인 만큼 지시자가 누구였는지 밝히는데 경찰은 주력하고 있다.

사측은 안전교육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현장 근로자는 "가스나 분진 등에 대한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맞섰다.

사일로는 가연성 가스가 상존하는 공간이지만 법적 검사 의무가 있는 설비가 아니다.

사용연한도 별도로 없다.

단 30분의 휴식 후에도 작업을 재개할 때는 가스 검사를 하도록 한 규정을 감안하면 사일로는 위험 시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셈이다.

안전 관리 규정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하청의 먹이사슬 끊어야" = 안전 불감증, 장시간 노동, 무리한 작업 등의 원인을 거슬러 따지면 하도급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지적도 있다.

사상자 다수는 대림산업으로부터 도급을 받은 유한기술이 재하도급한 회사에서 모집했다.

1967년 조성된 여수산단은 시설 노후화에 따라 신설이 아닌 정비·보수 작업 수요가 많다.

이곳에서는 소수의 대형 하도급업체들이 대기업의 일감을 집중적으로 따낸 뒤 이를 재하도급하는 형태로 계약이 이뤄지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단계 도급 과정에서 '돈이 되는 일'은 상위 단계 도급업체가, '위험한 일'은 하위 업체가 맡는 것도 다반사다.

아예 관행이 됐다는 것이 여수산단 근로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하도급 관행은 여수산단 만의 문제도 아니어서 발생보고가 누락된 경우까지 포함하면 산재 피해자의 80%는 하도급 업체 근로자라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적정가가 아닌 최저가 입찰을 하다 보니 싼값에 도급을 받은 업체들은 한 푼이라도 남기려고 무리한 작업을 강행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반면 원도급 회사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줄이고 사고 시 면책, 노무관리 부담감소 등을 노릴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중대재해 시 원도급업체도 제재를 받게 했지만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18일 현안 브리핑에서 "최근 3년간 발생한 2천290건의 중대재해에서 기업이 징역형을 받은 비율은 2.7%에 불과하다"며 처벌조항 강화를 촉구했다.

민주통합당은 또 "사고의 일차적 책임은 대림산업의 안전불감증에,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하청의 먹이사슬'에 있다"고 규정했다.

◇'이번에는 제대로'…각계각층 대책 마련 분주 = 고용노동부는 19일 대림산업 여수공장에 대한 특별감독에 들어갔다.

안전보건 관리, 하도급 업체 관리 등 산업안전 보건법 전반에 걸쳐 위반 여부를 점검한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5일 현장을 방문해 "재발방지를 위해 사전·예비 종합대책을 관계부처와 협의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 경제분야 제도개선 업무추진 계획 가운데 건설·안전분야 과제로 산업·건설현장 안전사고 예방체계 개선을 포함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18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여수산단에 종합방재센터 설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여수산단 부근에 화상 전문병원이 없어 중환자를 광주까지 이송해야 하는 실정을 고려해 산단 긴급의료체계 점검도 당부했다.

방재센터는 여수시가 1996년부터 필요성을 제기해 6차례에 걸쳐 정부에 설치를 건의했다.

화상 전문병원 건립도 노동계의 요구가 있은 지 수년이 흘렀다.

이 때문에 사고 후 관심을 보이다가도 뒷일은 챙기지 않는 탁상행정에 대한 비판과 함께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각도 나온다.

해법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부처와 자치단체는 예산 등을 탓하며 실행을 미루고 그동안 현장에서는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이 구호에 그치고 있다.

송성주 광주·전남 건설노조 사무국장은 "현장에서 안전 점검·교육, 관리·감독을 하게 돼 있고 실제 이뤄지고 있지만 이번 사례처럼 형식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문제"라며 "기업들이 부족하게나마 마련된 법과 제도대로만 공사를 시행한다 해도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수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sangwon7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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