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대출금을 잇따라 회수하면서 자금난이 심화돼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김기병 롯데관광개발개발 회장(75)은 18일 오전 9시 서울 세종로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채무불이행(디폴트) 이후 금융권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에 대해 연장을 거부해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법정관리 신청 배경을 설명했다.

롯데관광개발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과 함께 재산보전처분 및 포괄적 금지명령을 요청했다. 법원은 관련 서류 심사를 거쳐 정리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롯데관광개발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용산개발사업 디폴트에 따른 기업들의 피해가 본격화됐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코레일이 추진 중인 용산개발사업 정상화 방안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 회사는 용산개발 시행사인 드림허브의 2대 주주(지분 15.1%)였다. 또 개발실무회사인 용산역세권개발(주)의 1대 주주(지분 70.1%)로 코레일과 함께 개발사업을 주도해왔다. 롯데관광개발은 당초 2007년 11월 사업자로 선정된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에 전략적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010년 삼성물산이 철수하면서 내놓은 용산역세권개발 (주)지분 45.1%를 인수, 코레일과 함께 사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세종로 광화문빌딩과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개발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 배경이 됐다.

하지만 연매출 400억원가량의 중소기업이 총 사업비가 31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을 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게 개발업계의 평가다. 롯데관광개발은 용산 개발사업에 시행사 자본금 1510억원과 전환사채(CB) 인수 등 1748억원을 쏟아부었다. 회사 자본금(55억원)의 30배가 넘는 수준이다. 금융권에서 상당수 자금을 빌린 결과 이달에만 500억원가량을 갚아야 하지만 용산 개발사업이 좌초 위기에 내몰리면서 금융권이 만기 연장을 거부, 끝내 법정관리 신청을 택하게 됐다.

롯데관광개발은 이날부터 주식거래가 정지됐고,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로 유가증권시장 상장폐지 기준에도 해당돼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김 회장 개인적으로도 일생일대 위기를 맞았다. 공무원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해 성공과 좌절, 재기를 거듭했지만 이번 법정관리 신청은 돌이키기 힘든 치명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옛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행정사무관으로 출발한 김 회장은 부총리 비서관, 통상산업부 기획지도국장 등을 지낸 뒤 1971년 경영자로 변신한다.당시 회사를 차리면서 손위 처남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게 “사업자금은 필요없으니 ‘롯데’라는 이름만 쓰게 해 달라”고 했다. 신 회장의 여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이 김 회장의 부인이다. 그렇게 시작된 회사가 롯데관광개발이다.

롯데관광개발은 김 회장이 38.66%, 신 사장이 8.53%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롯데와 지분 관계는 전혀 없다. 하지만 40년 넘게 롯데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김 회장은 1973년 국내 최초의 시내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을 설립했고, 롯데관광개발을 여행업계 3위권 업체로 키우며 중견기업인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승승장구하던 김 회장은 외환위기 때 한 차례 난관에 부딪쳤다. 서울파이낸스빌딩 개발사업에서 고도제한 문제가 발생, 자회사인 유진관광과 시공사 태흥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김 회장은 결국 1998년 5월 롯데관광개발 대표에서 물러났다.

이후 김 회장은 2004년 6월 롯데관광개발 대표이사직을 맡아 경영에 복귀, 2006년 6월 여행업계 최초로 롯데관광개발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시켰다.

특히 건국 이래 최대 개발 프로젝트로 불리던 용산개발사업에 참여해 시행사인 드림허브 이사회 의장을 맡아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김 회장은 용산개발사업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롯데관광개발 보유 지분(425만2350주)의 75%가량인 321만주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다.

김보형/유승호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