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강행·모순된 업무규정·우왕좌왕 사고대응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대림산업㈜ 화학공장 폭발사고 현장 주변에서 '안전 불감증', '인재' 등 단어가 어김없이 입에 오르고 있다.

대림산업은 고밀도 폴리에틸렌 중간제품을 저장하는 사일로 내부를 잘 환기했고 가연성 가스 검사도 충실히 했다며 사고의 불가피성을 강조하지만 허술한 안전관리에 대한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빨리빨리'…밤 10시까지 연장근무
사일로 정기 보수가 시작된 것은 지난 12일이었다.

대림산업은 다음달 5일까지 일정으로 협력업체 유한기술에 작업을 맡겼다.

사고가 난 14일은 사실상 첫 작업 일이었다.

그전 이틀은 작업준비를 하며 보냈다.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지만 유한기술 고용 근로자들은 첫날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장근무를 했다.

근로자들은 식사 시간 외에도 오전, 오후 30분씩 휴식을 취할 정도로 고된 업무를 하고 있다.

플랜트건설 노조는 이를 두고 "밤늦은 시간까지 공기단축을 위해 노동자들을 죽음이 예고된 현장으로 밀어 넣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산단에서 이런 형태의 연장근무는 '관행'으로 여겨진다.

대림산업의 한 관계자는 "주변에서도 오후 9~10시까지 보수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오후 12시까지 하기도 한다"며 "페이(인건비) 문제가 있어서 다소 민감한 문제"라고 털어놨다.

사측에서는 야근을 해서라도 공기를 단축하면 가동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건비도 아낄 수 있다.

그러나 사고 시각이 오후 8시 51분인 점을 감안하면 제때 퇴근만 했더라도 17명의 사상자가 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뒤늦은 가정도 가능하다.

◇'20년 넘는 시설'…노후에 관리실태도 허술
낡은 시설과 관리실태도 아쉬움을 주고 있다.

폭발사고가 난 사일로는 1989년 설치됐다.

사일로는 가연성 가스가 상존하는 공간이지만 법적 검사 의무가 있는 설비가 아니다.

사용연한도 별도로 없다.

대림산업의 한 관계자는 "설비 연한이나 노후화를 논하려면 설비에 기계적인 마모나 부식 등이 있어야 하는데 이 설비는 부식성 있는 물질을 취급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단 30분의 휴식 후에도 작업을 재개할 때는 가스 검사를 하도록 한 업무 규정과 모순된다.

대림산업의 취급 형태에 따르면 사일로는 위험 시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셈이다.

◇'쾅' 우왕좌왕…사고후 대처도 미흡
사고 후 대응도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대림산업 측은 사고 발생 8분이 지나서야 119에 신고했으며 현장 근로자들은 구급차 출동까지 30~40분이 걸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림산업은 "근로자들에게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게 하고 뒷짐만 졌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나마 현장에는 간단한 구호장비도 없어 일부 근로자들은 생명이 위태로운 부상자를 현장에서 쓰는 발판에 뉘여 들고 뛰기도 했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6월에도 폭발사고를 겪은 바 있어 아쉬움을 더했다.

혹독한 사고를 체험하고도 재발방지는커녕 더 혹독한 사고 현장이 됐기 때문이다.

박찬조 대림산업 대표이사는 "이번 사고를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 그룹차원에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해 최대한 빠르게 실행하겠다"며 "물의를 일으키게 된 점을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말했다.

(여수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sangwon7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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