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보호 앞세워 홈플러스 2호점 3차례 반려한 경주시

재래시장 상인만 약자냐
주부들 소비선택권 달라…불허 땐 시장 낙선운동
성난 경주 주부들 "입점 許하라" 서명운동

“재래시장만 편드는 게 경제살리기 행정인가요? 콩나물값 100원에도 벌벌 떠는 주부들은 무시해도 됩니까?”

11일 경북 경주의 신도심인 충효동 이안아파트 상가에서 만난 이인옥 ‘경주시민 자조모임’ 회장(50)은 “경주시가 비싼 기름값 들여가며 울산, 포항의 대형마트로 장보러 가는 주부들 심경을 헤아리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회장은 두 달 전 충효동에 홈플러스 2호점 입점계획이 시 반려로 무산되자 30여명의 이웃 주부들과 함께 경주시민 자조모임을 결성, 2호점 유치 서명운동에 나섰다. 지금까지 서명자만 6000명에 이른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골목상권 보호를 앞세워 대형마트 입점 규제에다 기습 보복 단속에까지 나서는 마당에 주부들이 이렇게 대형마트 유치 운동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인구 26만명의 경주에는 현재 대형마트가 충효동에서 5㎞ 떨어진 용강동 홈플러스 한 곳뿐이다.

경주시는 홈플러스 신축대행사인 밸류인사이트리테일이 낸 지하 3층~지상 3층, 연면적 2만㎡ 규모의 2호점 건축허가에 대해 작년 10월과 12월, 올 1월 등 세 차례나 반려했다. 사업부지 내 시유지 매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장은 “재래시장과 실제 거리가 1㎞ 이상 떨어져 법적 하자가 없는데도 세 차례나 반려한 것에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반발이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사업자인 밸류 측도 작년 9월 첫 허가 서류 접수 때만 해도 거론되지 않았던 시유지 매입건이 한 달 뒤 재래시장 상인들이 반발하면서 쟁점화됐다고 주장했다. 밸류 측은 사업부지 내 시유지는 427㎡와 701㎡ 등 두 필지로 전체 사업부지의 5%에 그치고 매입가도 공시지가 기준으로 2억2500여만원에 불과해 서류접수 후 매입에 나설 계획이었다. 필지당 1000㎡ 이상, 매매가격 10억원 이상을 넘지 않으면 시의회 승인이 필요없는 데다 시유지를 사전에 매입할 경우 기대심리에 편승한 주변 지가 상승으로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경주시는 2차 서류접수 때부터 시 소유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허가를 반려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작년 10월부터 인구 30만 미만의 중소도시에는 대형마트들이 신규 점포 개설을 자제키로 합의한 만큼 재래상인들과 상생협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시유지 매각 불가’ 방침을 정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5년 전부터 보문단지에 아울렛, 복합영화관, 면세점 등 대형 유통점 입점 계획이 번번이 좌절됐다”며 “특정 집단의 민원에 무기력한 행정에 이젠 주부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맞섰다.

이 회장은 1만여명의 서명을 받는 대로 최양식 시장을 만나 주부권리를 찾겠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 재산인 시유지에는 상인들뿐 아니라 주부들 몫도 있다”며 “주부들의 권리가 관철되지 않으면 내년 시장 선거 때 실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시청 인터넷 게시판은 주부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동조하는 글로 가득 차 있다. 추락하는 경주 경제활성화를 위해 대형마트 유치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강했다. 2002년 28만5900여명에 이르던 경주 인구는 26만3811명(2월 말 기준)으로 감소세다. 2015년까지 이전하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와 50여개 협력업체 등 1만여명의 직원과 가족들 생활편의도 이번 기회에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주=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