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서울대=무조건 1위' 공식 깨졌다 … "평판보다 평가" 지각변동
② "2020년 대학, 신입생이 모자란다" 덩치 줄이고 강해져야 생존
③ 칼텍 웰즐리대 꿈꾼다 … 노벨상 힐러리 배출 노하우 '벤치마킹'
④ 탈(脫)규모 서강대 포스텍 한동대 울산대 금강대 주목받는 이유
⑤ 이대 프리미엄 NO! '적자생존' 7곳 남은 여대들 더 뜨겁게 경쟁


대학도 구조조정 시대다. 국내 대학들은 2020년 이전 '신입생 가뭄'을 겪을 전망이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전국 대학의 총 입학정원보다 줄어들기 때문. 대학은 몸집을 줄이고 더 강해져야 살아남는다. 창의적인 우수 인재를 길러내 미래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하는 소임도 있다. 삼성전자가 애플과, 현대자동차는 도요타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처럼 국내 대학도 공고한 서열을 깨고 세계 무대에서 하버드, 케임브리지 등과 겨뤄야 할 때다. 우리 대학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변화 방향을 5회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 주>

"규모가 크지 않은 대학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배출해 기쁘다. 총동문회는 차분한 마음으로 포용, 상생, 금도를 요청하며 서강대 6만여 동문은 금도를 지켜나갈 것이다."

25일 취임하는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9일 대선에서 당선을 확정짓자 서강대 총동문회는 이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논란' 을 재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의 첫 내각 인선에서 서강대 출신은 철저히 배제됐다. 청와대 비서진까지 통틀어 최순홍 미래전략수석 1명에 그쳤다.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는 대표적인 '작지만 강한 대학' 으로 평가받는다.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사학 라이벌들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작다. 상대적으로 동문 파워가 약해 주목도 덜 받는다.

하지만 대학 구조조정 시대를 맞아 '강소(强小)대학' 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양보다 질' '선택과 집중' '외양이 아닌 내실'이 대학들의 화두가 됐다.

◆ '과감한 시도' 승부수에 비전 뚜렷… 교수-학생 교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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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대학은 강점이 뚜렷하다. 전략적 선택과 집중, 과감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급변하는 대학 환경에 재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일반 조직에 비해 의사 결정이 느린 대학의 구조적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KAIST와 더불어 국내 양대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으로 꼽히는 포스텍(포항공대)은 한해 입학생이 300명에 불과하다. 설립 당시부터 소수 정예를 표방했다. 덕분에 여러 교육모델을 과감하게 시도해 대학 발전을 이끌어냈다.

포스텍은 2010학년도 신입생부터 전원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는 입시 실험을 단행했다. 또 기존 4년제 학사과정을 탈피, 박사 중심 교육과정으로 전면 개편해 미래 노벨상 수상을 노릴 수 있는 엘리트 융합인재 교육에 나섰다. 2011년엔 재미 공학자인 김용민 총장을 학교 역사상 첫 외부 총장으로 영입하며 변화를 계속했다.

경북 포항 한동대도 연간 입학생 800명 규모의 작은 대학이다. 그러나 삼성·LG·SK 등 대기업들이 개교 20년도 안 된 이 소규모 지방대 졸업생을 믿고 뽑는다. 실무 능력과 인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 무전공·무계열 신입생 선발, 무감독 시험 같은 '교육 실험'이 빛을 봤다.

학교 설립 10년밖에 안 된 충남 논산 금강대 역시 소수 정예 교육을 내세운 모델이다. 불교(천태종) 종립학교로 재단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전액 장학·기숙제도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정원을 당초 500명 수준에서 1200명으로 확대했지만 절대 규모는 여전히 작다. 수능 성적 2등급 이내의 소수 우수 학생을 뽑아 맞춤형 교육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백화점식 교육을 벗어난 전략적 시도가 주효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대규모 종합대는 특정 분야에 집중하거나 획기적 실험을 하기 어렵다" 며 "교수들 설득이 어렵고 다른 분야 반발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규모에 따라 장단점이 있지만, 지방대들이 대형 연구중심대학과 다른 모델을 찾아 여러 실험을 하는 것은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작은 규모와 탄탄한 재정은 내실 있는 대학 운영으로 이어졌다. 포스텍은 2011년 기준 '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 부문 압도적 1위(7872만 원)를 차지했다. 금강대도 학생 1인당 평균 장학금 737만 원으로 1위를 기록했다. 전국 4년제대 평균인 146만 원의 5배 가까이 된다.

학생 수가 적어 교수들과 직접 교감할 수 있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포스텍은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채 5명이 되지 않는다. 포스텍 관계자는 "교수가 학생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스킨십 교육' 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 서강대와 한동대가 교육과학기술부 선정 '잘 가르치는 대학'(ACE사업)에 뽑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 몸집 줄이면 평가도 잘 받아… 구조조정 파고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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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슬림화는 대학 평가에도 플러스 요인이다. 교과부의 '2013년 대학 평가지표 개선안' 에 따르면 올해부터는 정원 감축에 따른 가산점이 새로 부여된다. 대학 몸집을 줄일 수 있는지가 '부실 대학' 을 가려내는 핵심 지표가 된 것이다.

교과부는 "2013년 정부 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부터 정원을 감축해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는 대학에 대해선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며 "개별 대학이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선 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평가도 마찬가지다. 영국 더타임즈 세계 대학평가는 연구 실적, 논문 인용도, 교육 여건이 30%씩을 차지하는 평가 배점의 특성상 연구력 위주 소규모 대학들의 순위가 높게 나오는 편이다. 지난해에도 이공계 소규모 대학인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가 하버드 스탠퍼드 프린스턴, 영국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등 규모 있는 명문대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런 점에서 지난 2010년 자발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은 울산대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1만2000명 정원을 단계적으로 감축해 오는 2030년 최종적으로 37.5%를 줄여 7500명까지 다이어트 한다는 내용이었다. 탄력적 구조조정 대응을 원칙으로 삼았다.

특히 울산대의 학사 구조조정이 주목 받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 이 아니기 때문. 울산대는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곳이다.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에다 지역 입학자원도 풍부하지만 학교가 앞장서 움직였다. 교과부 장관을 역임한 김도연 전 총장이 재직 당시 "진짜 좋은 대학, 소수정예 대학으로 만들자"며 정원 감축을 주도했다.

대학 운영의 효율성과 대학교육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춰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해외 명문대들의 경우 정원 수준을 유지해 질 관리를 하고 있다. '더 프라이스 오브 어드미션(The Price of Admission)'의 저자 다니엘 골든은 책에서 "내가 입학한 1974년 하버드대에 1만1166명이 지원해 1600명이 합격했다" 며 "2005년 지원자는 2배인 2만2797명으로 증가했으나 입학 정원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썼다.

관건은 재정이다. 포스텍은 포스코, 울산대는 현대가 재단으로 있다. 이런 예외적 케이스를 제외하면 국내 대학(98개 사립대 평균)의 등록금 의존도는 무려 75% 수준에 달해 재정 자립이 요원하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정부 지원이 확보 안 된다면 등록금 수준을 자율화해야 한다" 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임진혁 울산과기대(UNIST) 학술정보처장은 "대학 재정 부족으로 '고등교육재정 교부금법' 시행, 등록금 수준 자율화 등이 거론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 이라며 "온라인 교육시스템 전면 도입 등 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 운영의 편의를 확보하면서도 교육비용은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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