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학생부군신위’ ‘301, 302’ 등으로 1980~1990년대를 풍미한 박철수 감독이 19일 자정께 경기 용인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별세했다. 향년 65세.

박 감독은 1980년대 대중영화를 다수 발표한 뒤 1990년대 들어 실험 정신을 투영하며 문제적 작가감독으로 방향을 틀었다. 박 감독은 김기덕 감독과 홍상수 감독의 롤모델이었다.

1948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그는 경북중,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상경했다. 1973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교사, 대기업 회사원 등으로 근무한 고인이 영화계에 발을 들인 건 신상옥 감독과의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됐다. 1975년 신필름 연출부에 들어가 감독수업을 받고 이경태, 설태호, 신상옥의 조감독을 거쳐 1978년 ‘골목대장’으로 데뷔했다. ‘밤이면 내리는 비’(1979), ‘아픈 성숙’(1980), ‘니르바나의 종’(1981) 등을 잇따라 만들었다.

이후 방송사에 들어가 1982년 MBC PD로 ‘세화의 성’ ‘말하는 눈’ ‘개’ ‘고깔’ ‘혜미의 서울’ 등 베스트셀러극장과 ‘암행어사’ 시리즈 등 TV드라마를 기획, 연출하며 특유의 영상미를 구현해 주목받았다. TV 마지막 연출작인 8·15 특집극 ‘생인손’은 그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받았다. 1985년에는 3개월의 휴가기간에 연출한 영화 ‘에미’로 제24회 대종상 작품상을 받았다.

영화계에 복귀한 그는 ‘안개기둥’(1987), ‘접시꽃 당신’(1988), ‘오늘 여자’(1989), ‘물 위를 걷는 여자’(1990) 등 대중적인 장르영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김혜수 주연 가족영화 ‘오세암’과 멜로영화 ‘서울 에비타’(1991), ‘테레사의 연인’(1991), ‘눈꽃’(1992), ‘우리 시대의 사랑’(1994) 등을 연출했다.

박 감독은 1994년 ‘박철수필름’을 설립하며 영화의 방향을 틀었다. 정통 멜로를 버리고 실험적인 영화 제작에 나선 것. 대표작인 1995년작 ‘301, 302’는 한국 영화 최초로 전 세계에 배급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컴펄션’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다. 요리를 즐기는 301호 여자 ‘송희’(방은진)와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거식증에 걸린 302호 ‘윤희’(황신혜) 사이의 오해와 갈등을 음식이라는 소재로 접근했다.

영화 ‘학생부군신위’(1996)는 전통 장례식을 통해 바라본 삶과 죽음을 유쾌하게 풀어내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예술공헌상을 받았다.

2000년과 2003년에는 중년 여성의 성적 이야기를 담은 ‘봉자’와 ‘녹색의자’를 만들었다. 유부녀와 고등학생의 사랑을 다룬 ‘녹색의자’는 2005년 선댄스영화제 경쟁 부문과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았다. 올해 초에는 ‘베드’를 개봉했고 최근에는 신작 ‘러브 컨셉추얼리’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이었다.

박 감독은 후학 양성을 위해 대전에 박철수영화아카데미도 설립했다. 저서로는 ‘박철수 감독 연출노트’가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1일 오전 8시.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