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대피령도 갈팡질팡…초동조치 3시간30여분후 '늑장'

경북 상주시가 지난 12일 발생한 염산 누출사고에 대한 주민 첫 신고를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사고업체는 염산 누출 사실을 3시간 넘게 숨겼고, 상주시 또한 주민신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탓에 초등조치는 사고 발생 후 3시간30여분후 이뤄졌다.

이미 대량으로 누출된 염산은 물 등과 만나 증발, 공기 중으로 수 백m 가량 퍼진 상태였다.

13일 상주시와 경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사고 당일 청리면 마공리 청리마공공단 웅진폴리실리콘에서 염산이 누출되기 시작한 때는 오전 7시 30분께다.

이 공장 직원은 A씨는 "염산 탱크가 파손돼 연기가 조금씩 나온 게 오전 7시30분께이고 오전 10시부터 누출된 염산이 물 등과 반응해 염화수소로 바뀌면서 흰 가스가 많이 생겼다"며 "자체 수습 중이라 소방서 등에 신고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후 10시 30분께 사고 현장에서 1㎞ 가량 떨어진 마을에 사는 김모(57)씨가 흰 연기가 하늘 위로 퍼지는 것을 보고 청리면사무소에 첫 신고를 했다.

김씨는 "내가 신고할 때까지만 해도 면사무소는 사고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청리면사무소 한 관계자는 "대응일지를 보면 10시 30분이 조금 지나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며 "곧 바로 시청 재난과에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주시 재난과 측은 "공식 일지를 보면 면사무소에서 보고된 신고내용은 없다"며 "오전 11시 11분께 소방서에서 연락이 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상주시 또는 청리면사무소 중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유독 화학물질이 공기 중으로 번져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조직 내 사고전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이런 와중에 면사무소 최초 신고자인 김씨가 오전 11시 1분 소방서에 사고신고를 했고, 이후 7분 뒤 청리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해 초등조치에 들어갔다.

상주시는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공장 인근 마공리 주민들에게 "사고가 났으니 외출을 삼가고 문을 꼭 닫고 있으라"는 주의 방송을 전파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부 주민들은 방송을 듣지 못했다.

한 주민(70)은 "방송은 못 들었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다"고 전했다.

만일 대형사고로 이어졌다면 주민들에게 큰 화가 미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상주시는 또 언론에 마을 인근 주민 760여명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가 뒤늦게 "대피 준비 명령이었고 큰 피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대피 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주민대피가 없었음에도 대피한 것으로 잘못 보도돼 상황이 확산됐다"며 오히려 언론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서 구미 불산 사고에서도 확인했듯이 유독물질이 누출됐다면 당장 피해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일단 대피 명령을 내려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대구경북녹색연합 이재혁 운영위원장은 "불과 3개월 전 구미불산 누출이라는 대형사고를 겪었음에도 공무원들은 여전히 화학물질 누출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관련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구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su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