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측 "구체적 진술 있다…고인 명예훼손"

고(故) 김지태씨 유족이 5·16 쿠데타 직후 강압에 의해 재산을 빼앗겼다며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재산 증여에 강박(强迫)이 있었는지'를 두고 법정공방이 펼쳐졌다.

9일 서울고법 민사12부(박형남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정수장학회 측 대리인은 "재산 증여에 강박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며 "국가가 김지태씨를 구금한 채 강박에 의해 주식과 토지를 가져가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는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정수장학회 측은 "1심이 강압을 인정하면서 인용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문을 믿을 수 없다"며 "비법률가와 성직자 등이 다수결에 의해 결정한 것이라 사실과 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지태씨 수사는 정상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었다"며 "구속과 수사가 빈번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수장학회 측은 대법관 출신인 김용담 변호사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인 황상현 변호사 등이 대리하고 있다.

이에 김씨 유족 측은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독대해 김씨에 대한 구속수사를 지시받았다는 구체적인 진술이 있다"고 반박했다.

유족 측은 "사건 당시 국가의 형벌권과 재산 증여가 관련이 있었다는 부분을 항소심에서 집중적으로 다투겠다"고 강조했다.

김씨의 5남 김영철씨는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국가기관의 결정을 뒤집고 정수장학회 측이 강박이 없었다고 주장해 심히 우려된다"며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기업인으로 2~3대 민의원을 지낸 김지태씨는 1962년 부정축재자로 분류돼 재판을 받던 중 주식과 토지 10만평 등을 정권에 증여했고, 이 재산으로 정수장학회 전신인 5·16 장학회가 설립됐다.

유족들은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년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뒤 `정수장학회는 재산을 반환하고, 반환이 어려우면 국가가 10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작년 2월 "강압에 의한 의사표시를 인정한다"면서도 원천무효는 아니고 취소사유일 뿐인데 취소권 행사시효가 지났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3월13일에 열린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