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 자녀를 대상으로 매년 100명의 신입생을 뽑고 있는데 이걸 다 채우기가 힘듭니다. 학력 수준 미달 때문에….”

정갑영 연세대 총장(사진)의 탄식이다. 그는 최근 기자와 만나 연세대의 저소득층 대상 정원외 특례입학 제도인 ‘연세 한마음전형’ 얘기를 꺼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선발된 학생에게는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데도 지금까지 8년째 모집인원을 제대로 다 채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올해 신입생 선발에서도 처음엔 84명밖에 뽑지 못했다. 나중에 모집인원을 못 채운 과에 탈락 학생을 배정한 끝에야 간신히 100명을 채울 수 있었다.

○입학 전형까지 바꿔보지만…

한마음전형에 합격하려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언어·수리·외국어·탐구영역 가운데 최소 2개 영역에서 2등급 이상(전체 1~9등급)을 받아야 한다. 연세대 일반전형으로 뽑힌 신입생 대부분이 수능 1등급인 것과 비교하면 기준이 센 편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기준을 넘는 저소득층 지원자가 많지 않다.

정 총장은 “가난한 집 학생을 뽑고 싶어도 뽑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급기야 연세대는 올해부터 선발 방식을 바꿔 최소 40명을 수능성적 없이 고등학교장 추천과 면접으로만 뽑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100명 전원을 이런 방식으로 선발할 방침이다.

연세대의 고민은 우리 사회의 ‘스프링 보드(구름판)’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과거엔 가난한 집 학생이 전교 1~2등을 다투며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대학진학률 부모소득이 좌우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수능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모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직업·학력·소득)가 자녀의 대학 진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적인 예로 서울 일반계 고등학교 졸업생 1만명당 서울대 입학생은 강남구가 173명으로 가장 많은 데 비해 금천구와 구로구는 각각 18명에 그쳤다. ‘부자 동네’와 ‘서민 동네’의 진학률 격차가 9배에 달했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높아 사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대학진학률도 높았다. 월평균 가구소득 1분위(110만원 이하)에 해당되는 학생의 4년제 대학진학률은 33.8%에 그쳤다. 반면 10분위(490만원 이상)에 속하는 학생의 진학률은 74.5%에 이른다. ‘30위권 내 대학’ 진학률은 1분위가 2.3%인 반면 10분위는 23.4%로 차이가 더 벌어진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은 “한국장학재단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수급자의 54%가 성적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교육이 계층 상승의 유일한 수단이므로 저소득층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빈곤탈출률 높여 사회 역동성 회복해야

사회 전체적으로 한번 빈곤층으로 추락하면 다시 중산층으로 올라서기 힘든 ‘빈곤의 고착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년도 빈곤층 가운데 금년도 빈곤에서 벗어난 비율을 뜻하는 빈곤탈출률은 2000년 48.9%에서 2008년 31.8%까지 하락했다. ‘가난’이 자식에게 대물림될 것이란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자녀 세대의 계층이동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42.9%에 달했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연구실장은 “빈곤탈출률 하락은 사회적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빈곤층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재기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태철/주용석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