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지 관할 파출소 소속 경찰관 공범으로 긴급체포
"2005년 은행 현금지급기 털이도 공모"…파문 '일파만파'

현직 경찰관이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단순 가담 정도가 아니라 우체국 내부 구조를 알려주고 범행 당시 망까지 봐 줬다.

금고털이범은 7년여 전 은행 현금지급기털이 사건도 이 경찰관과 공모했다고 진술해 파문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공범' 파출소 경찰관 긴급체포 = 전남 여수경찰서는 26일 경찰서 관할 삼일파출소 소속 김모(44) 경사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미 구속된 금고털이범 박모(44)씨로부터 공모 사실을 자백받아 25일 오후 9시 40분께 집에 있는 김 경사를 긴급체포했다.

박씨는 지난 9일 오전 2시께 여수시 월하동 모 우체국 건물 내 식당에 들어가 벽면을 산소용접기 등으로 뚫고 맞닿은 우체국 금고에서 현금 5천213만 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경사는 우체국 내부 구조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범행 당시 망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김 경사는 공모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며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여죄나 또 다른 공범이 있는지 조사한 뒤 김 경사에 대해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금고털이범과 경찰관의 '잘못된 만남' = 금고털이범 박씨와 '경찰 도우미' 김 경사의 인연은 박씨가 장례업을 하던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씨는 이후 차량견인업, 분식점 운영 등을 하면서 동갑내기인 김 경사와 친분을 쌓아왔다.

김 경사는 1992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 초임지인 고흥에서 여수로 발령난 뒤 줄곧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김 경사는 2002년 말~2007년 초, 2009~2011년 두 차례에 걸쳐 5년여 동안 여수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강력사건을 취급했다.

특히 지난해 6월에는 사행성 오락실 업주와 통화한 사실이 감찰에 적발돼 파출소로 전보되고 감찰 관리대상에도 올랐다.

이들은 지난달 말 김 경사가 박씨의 분식점을 찾았을 때 범행을 계획, 실행에 착수했다.

딸이 대학에 입학한 박씨에게는 학자금이 필요했다.

맞벌이를 하는 김 경사는 공모 자체를 부인하고 있어 아직 동기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훔친 돈은 우체국으로부터 300여m 떨어진 곳에서 절반씩 나눴으며 김 경사는 준비한 등산용 가방에 돈을 넣어 갔다고 박씨는 진술했다.

단독 범행을 주장하던 박씨는 김 경사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 등을 제시하자 공모를 시인했다.

◇영화 같은 범행 = 김 경사는 지난달 29일 오후 3시 8분 자신이 근무하는 삼일파출소 관할 우체국 내부 방범진단을 핑계로 금고가 있는 벽면을 휴대전화로 찍어 박씨에게 보여줬다.

사전에 우체국 인근 풀밭에 산소용접기 등 도구를 숨긴 박씨는 지난 8일 오후 10시께 여수시 중앙동에 있는 분식점 문을 닫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박씨는 택시를 타고 월하동 야산 인근 아파트 진입로에서 내려 논밭을 지나 우체국까지 4㎞를 걸어갔다.

길거리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등에 찍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김 경사도 이날 오후 10시 3분 등산복 차림에 흰 모자와 장갑을 착용한 채 자전거를 끌고 집에서 나와 우체국 인근 공터에서 박씨와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계획을 최종 점검한 박씨는 우체국 건물 옆쪽 출입문으로 들어간 뒤 우체국 후문 천장과 식당 출입문 상단에 설치된 CCTV에 스프레이로 흰색 래커칠을 하고 드라이버로 창문을 열어 식당에 침입했다.

박씨는 식당 벽면에 진열된 과자를 치우고 드릴, 산소용접기 등으로 패널과 맞닿은 금고 뒤 철판을 도려내 현금을 훔쳤다.

용접기를 쓰는 과정에서 불꽃이 튀지 않도록 원형자석을 이용해 은박지를 고정했고 발자국을 안 남기려고 현장에 물까지 뿌렸다.

김 경사의 강력팀 근무 경력에서 나온 치밀한 수법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박씨가 범행하는 동안 김 경사는 망을 본 뒤 9일 오전 4시 47분 집으로 가는 모습이 확인됐다.

◇2005년에도 현금지급기 털어…여죄는? = 박씨는 "7년 전에도 김 경사와 함께 범행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2005년 6월 22일 전남 여수시 미평동의 한 은행 현금지급기에 맞닿은 식당 벽을 드릴 등으로 뚫어 현금 879만 원을 훔친 사건이다.

이번 우체국 금고털이와 유사한 수법이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서 신원미상의 DNA를 채취했으나 용의자를 찾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처리했다.

이 사건의 공범으로도 지목된 김 경사는 당시 여수경찰서 강력팀에서 근무했다.

사건은폐나 수사방해를 시도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두 사람의 유착 관계나 현금지급기와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 간격으로 미뤄 지역에서 발생한 미제 절도사건을 전면적으로 되짚어볼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2005년 8월 여수 모 병원에서 발생한 금고털이 사건과의 연관성도 조사하고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당시 용의자는 사무실에 침입해 금고 뒤를 도려내 금품을 훔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1월 28일 오전에는 여수시 안산동 축협의 현금지급기가 파손돼 900여만원이 사라졌다.

같은날 새벽에는 이곳 보안 경비를 담당한 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범인이 보안시스템 작동을 막고 돈을 훔친 것으로 당시 경찰은 추정했다.

(여수연합뉴스) 박성우 손상원 박철홍 기자 3pedcrow@yna.co.krsangwon700@yna.co.krpch8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