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아리랑은 한민족을 상징하는 대표 가락이다.

국내외 한국인이 거주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후렴구로 하는 노랫가락이 만들어졌고, 이제 아리랑은 국민 누구나 한 곡쯤은 부를 수 있을 만큼 잘 알려진 민요가 됐다.

그렇다면 아리랑은 언제 처음 만들어진 것일까.

학계의 지속적인 연구에도 그 기원과 역사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하지만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아리랑은 때로는 서정가요로, 때로는 저항의 노래로 우리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해 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랑? 아이롱?..아리랑의 기원은 = 민요 '아리랑'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노래여서 그 어원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학계에서도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했지만 40여 가지의 이설(異說)로 분분하다.

대표적인 학설은 19세기 말 흥선대원군(1820-1898) 섭정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무렵 전국에서 부역꾼이 아내나 연인과 떨어져 있음을 한탄하며 부른 노랫말 '나는 님과 이별하네(아이랑·我離娘)'가 변해 아리랑이 됐다는 설명이다.

중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원군이 기부금 형식으로 거두어들인 '원납전'에 얽힌 얘기도 있다.

강제 납부에 "내 귀가 먹어서 원납전 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단원아이롱 불문원아이롱(但願我耳聾 不聞願我耳聾)'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는데, 여기서 '아이롱'이 변해 아리랑이 됐다는 것이다.

이 밖에 신라 건국 시조 박혁거세(기원전 69-기원후 4)의 비 '알영'의 덕을 찬미하기 위해 지은 시가 등이 '아리랑'이라는 말로 변했다는 '알영설'을 비롯해 여진어에서 고향을 뜻하는 말 '아린'에서 유래했다는 설, 인도의 신(神) 이름 '아리람 쓰리람'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이동복 국립국악원장은 "아리랑의 기원설화가 이렇게 많은 것은 아리랑이 역사 속 한민족의 애환을 잘 담은 노래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론 서정가요로, 때론 저항의 노래로 = 19세기 말 본격적으로 대중에 전파된 아리랑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때로는 서정가요로, 또 때로는 저항의 노래로 '변주'를 거듭했다.

대표 아리랑 민요 중 하나인 강원도 '정선 아리랑'은 특히 곡조와 노랫말이 서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강가를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처녀 총각의 상황을 표현한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자연에 이입해 노래한 '산천에 올라 임 생각하니 풀잎에 매듭매듭 산이슬 맺히네' 등의 구절은 이러한 특징을 드러낸다.

일제 강점기에는 저항의 노래로 널리 불렸다.

특히 나운규가 만든 무성영화 '아리랑'(1926년)의 개봉은 전국에 일본에 대한 항거 정신을 실은 노래 '아리랑'의 붐을 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영화 속 노래의 구슬픈 곡조는 3.1운동 때 잡혀서 일제의 고문으로 정신이상이 된 민족청년의 비극과 어우러지며 억눌린 민족의 한을 표현하고 항일 정신에 불을 지폈다고 평가받는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고 노래하는 이 곡조는 지금도 대중에 가장 잘 알려진 아리랑으로 꼽힌다.

이 밖에 모를 심거나 논밭을 매는 농사꾼, 배로 강을 건너는 사공의 노동요로도 널리 불린 아리랑은 현대사 속에서도 변주를 거듭하고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리랑은 민주화 운동에 쓰인 항쟁가나 쟁의가로 성격이 바뀌기도 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응원가로도 불렸다.

김영운 한양대 교수는 "우리 민요는 가사나 멜로디가 열려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새로운 취향에 맞게 변주해서 부를 수 있다"이라며 "아리랑도 수세월을 거치며 다층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반도에만 60여 종·4천여 수.."전승·발전이 관건" = 정선 아리랑에 전라도의 '진도 아리랑', 경상도의 '밀양 아리랑'을 더한 국내 3대 아리랑을 비롯해 현재 한반도에만 총 60여 종, 4천여 수의 아리랑이 존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계기로 아리랑을 전승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은 "아리랑이 다른 세계무형유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라면서도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몽골·카자흐스탄의 해외동포가 만든 아리랑까지 모두 포괄해 전승·발전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신재 한림대 명예교수는 "영국의 시, 서양의 연극과는 다른 아리랑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힘'을 규명하기 위한 깊이 있는 학술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hrse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