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숨겨진 복지국가다?’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복지 시스템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공공복지의 취약성을 민간 복지로 메워온 특유의 구조가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복지의 총량이 아니라 재분배 구조 자체가 꼬여 있다는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는 “한국 복지의 특징은 공공복지가 덜 성숙한 반면 기업복지 등 민간 복지는 상당히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에서 교육과 보건 등에 국가가 쓰는 공공사회서비스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8%에 그친다. 의료 주택 보육 등 국민후생의 기본 영역을 국가 대신 기업이 맡아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세금 감면(조세지출)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수혜 대상별로 조세 감면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기업과 근로자에게는 총 70조원이 돌아갔다. 전체 조세 감면 혜택의 절반에 해당한다. 보험료 특별공제, 임시투자세액공제, 외국인투자기업 조세 감면 등 대기업과 상위 소득자 몫이 많다.

이에 비해 취약계층에 돌아간 것은 3조9000억원 정도다. 조세지출은 사회적 약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경우 소득 재분배에 기여하지만 한국에서는 반대다. 양 교수는 “한국은 기업의 사회복지성 지출에 다양한 세금 혜택을 준다”며 “이처럼 기업복지와 사회복지성 조세 감면 규모를 더하면 한국은 미국처럼 ‘숨겨진 복지국가’에 속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공공지출 비중은 GDP의 17.4%에 불과하다. 하지만 민간 부문의 복지지출과 조세 감면 효과를 포함한 전체 ‘순사회지출’은 GDP의 27.5%로 스웨덴(27.8%)에 버금간다. 공·사를 합친 복지의 총량은 크지만 영세 사업장 종사자나 실직자, 자영업자 등은 그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

한국 역시 비슷한 구조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은 각종 조세 감면 속에서 높은 수준의 기업복지를 제공하지만 중소기업은 여력이 없어 이를 활용할 수 없다. 좋은 직장의 근로자는 퇴직연금 등 사용자가 부담해주는 사적연금에 가입,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지만 저소득계층에는 그림의 떡이다.

양 교수는 “민간 복지가 거대해질수록 사회적 분배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이 같은 복지구조는 상위소득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복지지출이 오히려 시장의 양극화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체 복지 규모가 아무리 커도 적절한 분배 구조체계가 선행되지 않으면 정책적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의미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