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실시한 환경미화원 공채 경쟁률은 대부분 10 대 1을 넘는다. 대학을 졸업한 지원자도 상당수다. 반면 사람 구하기 힘들다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하소연은 끊이지 않는다. 1990년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왜 젊은이들은 공장을 버리고 길거리 청소를 택하는 것일까. 답은 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사회 안정을 위협할 정도로 크게 벌어지고 있다. 임금 격차와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 여부만이 아니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각종 복지 혜택으로 인해 그 격차는 더 커진다. 여기에 정부가 기업들에 제공하는 각종 세제 혜택(조세지출)이 그 차이를 더욱 벌려놓고 있다. 세제 혜택을 통해 감면받은 세금은 정규직 복지 강화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서 발생한 격차가 너무 커 이를 복지예산으로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두 번째 순서로 대기업과 정규직 노동자를 꼽은 이유다.
늘어나는 '근로 빈곤층'…대기업 정규직의 '복지 독점구조' 깨야
울산공단의 작은 하청업체 B사에 다니는 김씨(45)의 꿈은 소박했다.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내 집을 갖는 것. 하지만 쉽지 않았다. 연년생인 딸 둘의 대학 등록금은 한 해 1400만원. 노모의 병원비가 불어나면서 2년 전부터 빚이 빠르게 늘었다. 게다가 집주인은 내년 초 전세계약이 끝나면 100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했다. 그는 “직업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학자금 지원 같은 혜택도 못 받는다”고 토로했다.

김씨가 부러워하는 것은 원청업체 A사 근로자들이다. A사는 직원 1만명이 넘는 대기업이다.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지만 자신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다. 이뿐만 아니라 학자금, 의료비, 주택자금 등을 회사에서 지원받는다. 김씨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괴감을 느낀다고 한다.

◆임금보다 무서운 복지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및 복지 격차를 들여다보면 공공 부문에 비해 과도하게 비대해진 한국 기업복지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기업이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사내 복지’는 법적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복지예산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기업복지는 정부보다 더 큰 역할을 해왔다. 자녀 학자금, 주거 지원금, 탁아소 운영, 의료비 지원 등은 근로자 삶의 질을 높이고 중산층으로 올라서는 기반을 제공해왔다. 비정규직 증가와 중산층 감소가 동시에 이뤄진 이유 가운데 하나도 사내 복지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대기업(300인 이상)과 중소기업의 복지비용 비교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이 제공한 학비 보조금은 대기업의 17.6%에 불과했다. 의료비는 25.2%, 주거비용 지원도 41.8%에 그쳤다. 비용으로 계산하면 중소기업은 근로자 1인당 15만원을 지출한 반면 대기업은 25만5000원을 썼다. 박진희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직접노동비용) 격차가 48.5%라면 복지(간접노동비용) 격차는 이보다 큰 64.9%에 달한다”며 “이 같은 분배구조는 저임금 근로자를 빈곤층으로 몰락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미래 복지를 저당잡힌 사람들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건강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은 근로자에게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여기서도 소외되고 있다. 고용부의 ‘2011년 기업체 노동비용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근로자 1인당 사회보험 가입 등에 지출한 법정 복리비는 대기업의 66.4%에 불과했다. 특히 고용보험료 지출 비용은 대기업의 42.8%에 불과했다. 영세 사업장일수록 고용불안이 더 크다. 따라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비정규직은 해고와 동시에 긴급한 위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8월 기준)은 33~38%로 정규직(84~99%)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정체 상태”라며 “현행 사회보험제도가 정규직 대기업 근로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보험료 납부 능력도 떨어지는 근로자들이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머물면서 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여기엔 기업과 근로자의 ‘자발적인 담합행위’도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근로자는 사회보험료로 지출되는 돈을 당장 생활에 쓰고 싶어한다. 영세 기업 고용주 역시 근로자의 보험료를 부담으로 여겨 가입을 꺼린다. 결국 근로자 복지를 위해 써야 할 돈이 다른 곳으로 샌다는 얘기다.

◆노·사·정 모두 나서야

기업복지의 빈틈을 메워야 할 공공복지는 여전히 취약하다. 정부가 교육과 보건, 주거, 보육 등에 쓰는 공공사회서비스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8%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11년 기준) 13%와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뒤늦게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최저임금 120%(월 124만원) 이하인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와 사용자에게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의 보험료 3분의 1을 지원하기로 했다. 건강검진비와 보육시설, 기숙사 혜택 등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발표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떨어져 영세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많다. 일부에선 정규직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와 경직된 고용시스템이 비정규직 양산을 불러온 만큼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노·사·정이 함께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속노조의 한 전문가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금속노조의 경우 대부분의 조합원이 국가복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풍부한 기업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스스로 주변의 사각지대를 둘러볼 계기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경제성장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어온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의 복지를 합리적인 선에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