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천자칼럼] 페이스오프 살인범

1997년 개봉된 영화 ‘페이스오프’(Face Off)는 두 사람의 얼굴을 통째로 바꾼다는 파격적인 소재로 화제를 모았다. FBI 요원인 존 트래볼타와 테러범 니컬러스 케이지가 얼굴 골격은 그대로 둔 채 피부만 바꿔 이식해 뒤바뀐 인생을 살게 된다는 설정이다. 당시만 해도 이런 일은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나 가능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와 유사한 일이 현실에서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수술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성형은 보통 ‘미용성형’ ‘재건성형’ ‘신변성형’으로 나뉜다. 미용성형이 예뻐지기 위한 것이라면 재건성형은 부상이나 질병으로 본래 모습을 잃은 신체 일부를 복원하는 수술이다. 재미있는 건 신변성형이다. 신변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는 성형으로 대부분 범죄와 관련이 있다. 2009년 대검찰청은 증인의 성형수술비를 국가가 지원해주자며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개정안을 제안한 적이 있다. 보복 우려가 있는 강력범죄의 증인으로 나선 사람의 안전을 위해 성형 비용을 국고에서 대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변성형은 증인보다는 범죄자들이 더 애용(?)하는 것 같다. 지난해 일본은 ‘일본판 페이스오프’가 발생했다고 한동안 떠들썩했다. 2007년 영국인 여강사를 살해한 범인이 성형수술 후 태연하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4년 만에 체포됐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 2008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다른 파 조직폭력배를 살해하고 달아났던 조폭을 최근 잡고 보니 얼굴이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범인은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는 점만 인정했으나 경찰은 보톡스 시술 등 다른 성형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체중까지 15~20㎏ 빼 더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번에 검거된 범인 말고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얼굴에 손을 대는 수배자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외국에서 원정 올 정도로 성형기술이 좋다고 하니 범인들이 유혹을 느낄 법도 하다. 경찰의 눈도 피하고 얼굴도 뜯어고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성형수술 뒤로 숨는 날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학전문 저널 ‘뉴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미국 노트르담대 연구진이 페이스오프 범인을 찾아내 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매칭방법이라는 기술을 이용, 수술 후에도 78%라는 놀라운 인식률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다가는 지나가는 사람을 잠깐만 스캔해도 성형 여부를 가릴 수 있는 기계까지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