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처장관, 부산시장을 지낸 2선(15·16대) 국회의원 김기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66·사진). 2003년 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를 청와대로 불렀다. 16대 국회의원 임기 말이던 그에게 취임 1년차 노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일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던 것. 하지만 그는 “나도 이제 공무원이 아닌 내 인생을 살고 싶다”며 몇 달 뒤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베이징에 짐을 풀고 어학연수 1년6개월,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박사과정 4년 등 꼬박 7년을 베이징에서 살았다.

그가 한·중발전촉진협회장 자격으로 28일부터 나흘간 중국의 원로 정치인·관료들을 제주로 초청해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세미나’를 연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한·중 양국의 전직 장관·의원들이 모여 공동발전 방안을 논의하고 친선을 도모하는 자리”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 전 장관은 “올해는 중국에서 자오난치(趙南起) 전 정협 부주석과 장슈푸(張秀夫) 전 사법부 상무부부장(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경찰책임자) 등 장·차관급 인사 40명이 온다. 한국 측에선 이수성·이한동 전 총리를 포함해 30여명이 참석한다”고 말했다.

“1994년 후진타오 부주석 초청으로 중국에 갔다가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부터 중국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해마다 찾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어를 할 줄 모르니 ‘수박겉핥기’식 방문이더군요. 국회의원 시절에 중국어 학원도 다녔는데, 안되겠다 싶어 아예 유학을 결심했던 것이죠.”

2004년, 58세에 유학생이 된 김 전 장관. 그는 “새벽공기를 마시며 어학원으로 다시 도서관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고 회상했다. 중국의 원로 정치인들이 한·중 교류세미나를 제안한 것도 60세가 넘은 나이에 그렇게 공부하는 한국의 전직 장관을 잘봤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한·중 원로들의 대화창구가 올해로 4년째. 김 전 장관은 이런 행사가 장차 한·중 공동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에 맞설 강대국이 되기 위해선 한국과 같은 우방이 필요하고, 한국도 1등 국가가 되기 위해선 중국이라는 디딤판을 활용해야 합니다.”

행정고시(11회) 출신으로 26세에 공직에 입문해 30대 후반에 내무부 행정과장, 40대에 부산시장을 지내는 등 각종 초고속 승진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했던 김 전 장관. “인생에 ‘늦었다’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 무언가를 시작해 열심히 하면 1년 정도 뒤에는 나의 영역이 또 하나 생기거든요.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진 한·중 교류세미나지만, 몇 년 뒤에는 한·중·일 원로포럼으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