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매수죄 위헌성 전혀 인정 안해
'선의로 줬다'는 2억 사퇴 대가로 판단

대법원이 곽노현(58) 서울시교육감의 유무죄를 판단한 핵심 논점은 이른바 '사후매수죄'로 불리는 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였다.

이 조항은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였던 자에게 금전·물품 등 재산상 이익이나 공사의 직(職)을 제공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검찰은 곽 교육감이 당선 이후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전달한 행위를 같은 진보진영 교육감 후보를 사퇴한 데 따른 대가라고 보고 사후매수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곽 교육감 측은 사후매수죄가 헌법에 위배되고, 공직선거법이 정한 공소시효가 끝난 뒤 기소됐으며, 후보자 사퇴의 대가를 목적으로 2억원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반박 논리를 폈다.

◇"사후매수죄 위헌적 요소 없다" = 대법원은 사후매수죄가 위헌이라는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원칙, 책임과 형벌의 비례원칙 등을 고려해 사후매수죄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곽 교육감 측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후매수죄 조항은 의미와 내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합리적 해석기준을 어렵지 않게 도출할 수 있고 법을 해석·집행하는 기관이 자의로 해석하거나 집행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는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

또 사후매수죄 조항에서 금지하는 이익 등의 제공·수수 행위 제한은 전면적인 금지가 아니라 입법 목적 달성에 필요한 부분적 금지에 그쳐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후매수죄의 법정형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한 것은 사전매수 못잖게 사후매수도 중대한 선거부정행위로 엄벌할 필요성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즉 입법자의 의도를 고려할 때 형벌 체계의 균형을 현저히 잃었다고 볼 수 없어 책임과 형벌의 비례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다.

◇'공소시효 지났다' 주장도 이유 없어 = 검찰이 기소하기 전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곽 교육감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직선거법 268조 1항은 선거일 전의 범죄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당해 선거일 후'를 공소시효의 기산일로 규정하고 있지만 선거일 후의 범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있은 날'을 기산일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는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선거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선거일 후의 선거범죄도 선거일 전의 범죄와 마찬가지로 실효성 있는 단속과 처벌을 유지하고자 내린 결단이라고 본 것이다.

유독 사후매수죄를 저지른 사람만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데 있어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선의로 준 2억' 아니라 후보 사퇴 대가 = 박 교수에게 지급한 2억원이 후보자 사퇴 대가가 아니라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선의로 지급한 것이기 때문에 사후매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은 사후매수죄는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였던 사람에게 재산상의 이익 등을 제공하거나 후보자였던 사람이 재산상의 이익 등을 받음으로써 곧 성립한다고 봤다.

즉 후보자 사퇴가 있기 전 제공자와 수수자 사이에 재산상의 이익 제공에 관한 사전합의가 이뤄지거나 이익제공 행위가 투표 종료 이전에 이뤄져야만 범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곽 교육감과 박 교수의 관계, 박 교수의 사퇴가 당선에 미친 영향, 2억원을 제공한 동기 등을 종합할 때 곽 교육감이 사퇴 대가를 지급할 목적으로 2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경제적 도움을 준다거나 원활한 교육감직 수행을 위해 장애요소를 없앤다는 동기가 일부 있었더라도 이는 부수적인 목적에 불과하다고 보고 유죄를 확정했다.

다만, 곽 교육감은 올해 1월 사후매수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해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헌재가 사후매수죄의 위헌 여부 해석을 대법원과 달리해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다면 불씨가 살아날 수도 있어 향후 헌재의 결정에도 관심이 쏠린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kind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