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해야 하는 외과 계열이 전공의들의 기피 분야로 굳어지면서 특히 산부인과의 폐해가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분만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는 54곳이나 된다. 지난해 이들 지역의 신생아는 1만8769명. 인근 시·군이나 대도시로 원정을 다녀야 하는 원치 않는 ‘출산 난민’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전체 출생아(47만1265명)의 3.91%다. 전남 해남군 등 분만 산부인과가 한 곳뿐인 시·군·구 32곳에서도 산부인과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갈수록 출산율은 낮아지는데 중소도시 이하급 거주지에선 “애를 낳으려면 대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한탄이 나온다.

그럼 대도시라고 형편은 나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서울 등 수도권 인근에선 ‘자연분만’ 산부인과 대신 ‘보톡스 시술’과 ‘모공 관리’를 앞세운 여성의원 간판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분만실을 닫은 서울 강서구의 한 산부인과 원장은 “분만 산부인과는 야간·긴급상황에 늘 대비해야 한다. 그만큼 고되다”며 “서울에서 산부인과를 개원하려면 평균 5억원 정도 드는데 다른 과보다 설치비용이 많이 들어 적자인 곳이 수두룩하다”고 털어놨다.

부산 강서구와 같은 대도시에도 분만실이 없다. 강서구 보건소 관계자는 “분만 산부인과가 없기 때문에 지역주민이 여러모로 불편하다. 새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에서 52곳의 산부인과 병원이 개업했고 102곳이 간판을 내렸다. 전체적으로 50곳이나 줄어들었다.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의대생도 급격히 줄고 있다. 올해 배출된 산부인과 전문의는 90명, 2001년(270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또 전문의가 된 90명 가운데 남자는 10명뿐이다. 현재 전국 산부인과 전문의 가운데 45%가 50세를 넘겼을 정도로 고령화됐다. 야간에 분만실을 지켜야 할 30대 젊은 의사들은 전체의 20%도 되지 않는다. 의료계에선 일본처럼 머지않아 ‘출산 난민’ 사태가 본격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산부인과가 없는 지방 소도시의 임신부들이 대도시의 병원을 찾다 사망하는 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신정호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이대로 가다간 몇 년 후에는 동남아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수입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일본처럼 특정 지역을 선별, ‘산부인과 지역공공의사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예컨대 산부인과를 지원하는 의대생에게 국비로 학비 전액을 지원하되 농어촌지역, 도서산간벽지 등 의료 취약지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이준혁/김희경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