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내년부터 재수강 금지

중복투자 비용으로 복지 개선
서울대는 "요건 강화할 것"

"형평성 어긋나" 학생 반발
정갑영 총장 '학점 인플레 바로잡기' 의지

연세대가 대학가 ‘학점 부풀리기’ 관행에 ‘메스’를 댔다. 국내 대학 스스로도 평가절하하고, 유학이나 기업 취업 과정에서도 홀대받는 재수강 제도를 확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대학의 오랜 관행을 바꾸겠다”는 정갑영 연세대 총장(사진)의 의지는 확고하지만 좋은 학점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학생들과의 갈등도 예상된다.

○정 총장 “재수강 원칙적 금지”

지난달 30일 연세대 주요 보직 교수와 교직원이 참여한 ‘2012 연세비전 교직원 컨퍼런스’에서 정 총장은 “현재 교육환경을 가장 악화시키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재수강 제도”라며 “학생들과 많은 갈등이 예상되지만 내년 신입생부터는 재수강을 원칙적으로 금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재수강 학생에게 중복 투자되는 비용을 학생 복지와 교육 환경 개선에 쓰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연세대는 재수강 제도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세부 사항 마련에 들어갔다.

대학 측은 전체 강의 가운데 재수강 학생 비율을 9% 정도로 분석했다. 재수강 학생 비율은 2010년 재수강 요건을 평점 D+에서 C+로 완화시킨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연세대 관계자는 “재수강 학생 비율을 낮춰 중복 투자를 줄이고 그 비용을 다른 쪽에 사용하는 게 학생들에게 이익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국내 각 대학에서 학점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는데 연세대가 앞서 이런 관행을 고쳐보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4년제 일반대학 182개교의 2011학년도 학점분포 현황’에 따르면 서울대 재학생 중 A학점 비율은 50.9%, 연세대 40.7%, 고려대 39.2% 등으로 ‘학점 인플레’는 각 대학 공통 현상이다.

모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대부분의 지원자 학점이 3점대 후반으로 변별력이 없어 전체 입사 평가 점수에서 학점은 5%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며 “한국 대학의 학점 평가 방식이 선진국처럼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반영 비율을 더 높일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변경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재수강 요건 강화 검토”

대학들도 재수강 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으나 학생들의 반발 때문에 제대로 손을 못 대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재수강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 학점은 일정 학점 이하로 제한하거나 재수강 요건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서울대는 조만간 미래교육팀을 발족시켜 재수강 요건 강화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교육 내실화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성균관대는 상대평가를 엄격하게 하고 재수강 때 최고 학점도 B+로 제한했다. 동국대는 모든 교과목에 상대평가를 도입하고 재수강은 성적이 C+이하인 경우에만 가능토록 했다. 중앙대나 서강대 등은 대학마다 학점이 후한 상황에서 ‘우리 대학은 학점을 짜게 준다’는 내용을 홍보전략으로 택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재수강 요건 강화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각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학점포기제’ ‘재수강 요건 완화’ 및 ‘절대평가 강의 확대’ 등 학생들의 고학점 취득을 위한 학사운영 제도가 공약으로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모씨(연세대 노어노문학과 3학년)는 “가뜩이나 취업도 어려운데 타 대학과 다른 기준으로 경쟁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내년 지원할 학생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연세대 지원을 꺼려 경쟁 대학에 인재를 빼앗기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재수강 제도 문제점은 일정 부분 인정한다”면서도 “재학생들에게 소급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만큼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기현 서울대 교무처장은 “재수강 제도 개선과 더불어 대학의 학점 분포에 대한 정보를 학과별로 공시하는 등 보완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우섭/박상익 기자 duter@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