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에게 특허침해소송 대리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23일 특허권 등의 침해로 인한 민사소송에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제한하는 변리사법 8조가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조모씨 등 변리사 8명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조씨 등은 특허청에 변리사 등록을 한 뒤 변리사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상표에 대한 침해소송에서 소송대리인 자격을 받지 못하자 변호사와 비교해 불리한 차별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특허침해소송은 소송대리 시 고도의 법률지식, 공정성, 신뢰성이 요구되는 소송”이라고 전제한 뒤 “소송당사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인 변호사에게만 소송대리를 허용하는 것은 합리성이 인정되며 입법 재량의 범위 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변리사법이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입법자가 변호사와 비교해 변리사를 부당하게 차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어 평등권 역시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변리사법 제8조는 ‘변리사는 특허와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특허침해로 인한 손해배상과 침해금지 등 민사소송은 변리사에게 대리권이 없는 것으로 해석돼왔다. ‘법률에 따라 재판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는 민사소송법 제87조도 변리사 포함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이번 결정은 헌재가 특허침해 손해배상 등 일반적인 소송 대리는 변호사들의 고유 영역이라고 판정한 것으로, 변리사와 변호사의 해묵은 업무 다툼에서 변호사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과 관련, 이동흡 재판관은 보충의견으로 “특허침해소송에서 변호사와 변리사의 공동소송 대리를 허용, 소송의 신속화와 전문화를 도모하는 한편 소송당사자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도록 입법적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일본은 2002년 사법제도 개혁을 통해 변리사에게 변호사와 함께 특허소송을 대리할 수 있도록 변호사·변리사 공동소송대리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이날 결정에 대해 신영무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변호사 변리사 자격제도의 본질적 차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반겼다. 반면 “오늘은 대한변리사회에 있어 역사적인 날”(윤동열 대한변리사회 회장)이라며 잔뜩 기대를 걸었던 변리사 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영회 전 부회장은 “법조문 해석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음에도 헌재재판관 중에서 반대의견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명백한 제식구 감싸기”라고 목청을 높였다. 전종학 부회장은 “헌재 결정에 합리적인 논리가 결여돼 있어 통탄스럽다”며 “향후 입법기관인 국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변리사업계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일/이고운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