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여학생들을 지도교수가 성희롱했다는 의혹에 대해 학교 측이 미온적인 대응을 하면서 피해 학생들이 2차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려대에 따르면 지난 3월7일 고려대 인문사회대학원 박사과정 여학생 2명은 지도교수인 H교수로부터 성추행당했다며 교내 양성평등센터에 신고했다. H교수가 수시로 신체 접촉을 시도하고, “논문작업을 위해 모텔에 함께 투숙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성평등센터는 신고 접수를 받은 지 140일이 지난 26일까지도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고려대 학칙에 따르면 양성평등센터는 신고된 교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60일 내에 조사·심의를 마쳐야 한다.

이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60일 내에 조사를 마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규정에 따르면 당사자의 요구가 있거나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경우 조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고, 그 기간의 제한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고려대 학생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학교 측의 조사가 장기화되면서 피해 학생들의 심적 고통도 커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여학생위원회, 반성폭력연대회의 등으로 구성된 ‘H교수 대책회의’ 관계자는 “논문 지도교수인 H교수가 조사를 받는 중에는 논문 심사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피해 학생 중 한 명은 논문 제출기한으로부터 2주가 지나도록 논문 심사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피해 여성들이 H교수 측 관계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전화도 수차례 받는 등 지속된 2차 피해로 큰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H교수는 조사 기간 중에 피해 학생들의 신상정보가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해 “피해자들이 꽃뱀이다. 학생들이 내 엉덩이를 만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려대 여학생위원회 대표인 이아림 씨는 “학교 측은 H교수의 주임교수 보직 해임을 찬성하는 930여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서명을 보고도 H교수의 보직을 유지시켰다”며 “적어도 지도교수를 즉시 바꿔주고, 조사 결과를 신속히 발표했다면 피해 학생들의 2차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작년 의대생 성추행 사건 이후 피해자 보호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졌을 거라 생각했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학교 측의 안이한 대응을 비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