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의 한도를 법으로 강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근로시간 단축이 소프트랜딩하도록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 후생노동성 노동조건정책과의 아오야마 게이코 조사관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행정규제의 효율성’을 묻는 기자에게 이같이 대답했다. 기업 사정에 맞게 노사가 자율로 근로시간한도를 결정하라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 기업들의 잔업시간한도는 후생노동성이 마련한 지침을 훨씬 웃돈다. 이 지침에는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를 △1주 15시간 △2주 27시간 △4주 43시간 △1개월 45시간 △2개월 81시간 △3개월 120시간 △1년 360시간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기업은 거의 없다. 어겨도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의 신타니 노부유키 노동국장은 “노사가 합의만 한다면 무제한 연장근로도 가능하다”며 “정부 지침은 권고일 뿐 아무 강제력이 없다”고 말했다. 경제강국 일본에는 장시간 노동을 하는 근로자들이 많은 편이다. 1인당 국민소득 4만3000달러가 무색할 정도다.

히타치의 경우 노사가 맺은 잔업한도시간은 월 127시간, 연 1000시간이다. 그러나 연장근로한도에는 휴일근로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어 실제 잔업시간은 이보다 훨씬 길다.

현재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규정하고 있는 잔업한도는 주당 12시간(월 52시간, 연 624시간)에 불과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와 한창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도요타는 월 90시간, 연 720시간의 잔업이 허용되고 있고, 미쓰비시상사는 월 115시간, 연 800시간까지 잔업한도를 정해놓고 있다.

일본에 장시간 근로자가 많다는 것은 정부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주당 근로시간 60시간(하루평균 12시간)을 넘는 근로자가 매년 10% 안팎에 달한다.

1993년 10.6%, 2000년 12.0%, 2004년 12.2%까지 올라갔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무렵인 2009년 9.3%, 2010년 9.5%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많다. 일본의 임금근로자가 5300만명, 연간 평균 근로일수가 240일인 점을 감안하면 매년 500만명 이상의 근로자가 연간 2880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무역흑자를 많이 냈을 때 미국에서 장시간 노동에 대해 문제 삼자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1987년 48시간이었던 법정근로시간을 1997년까지 10년에 걸쳐 40시간으로 단계적으로 축소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강압책을 쓰지 않고 노사자율에 맡겼다. 기업의 경쟁력과 고용유연성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갓 넘긴 한국 정부가 무역흑자에 대한 외국의 시비도 없는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일자리 창출’이나 ‘근로자의 삶의 질’을 언급하며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로 밀어붙이려는 것과는 접근방법 자체가 달랐다.

현재 일본 근로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한국보다 훨씬 짧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일본 임금근로자의 연간근로시간은 1980년대 후반 2100시간에서 2010년 말 1733시간으로 300시간 이상 줄었다. 한국의 2193시간에 비해 430시간이나 적다. 일본의 근로시간이 줄어든 것은 법정근로시간 감소 탓도 있지만 고용구조 변화에 따른 파트타이머(단기 시간근로자) 증가가 큰 요인이다.

일본의 파트타이머는 2010년 전체 임금근로자의 24%인 1192만명에 달했다. 1990년에만 해도 710만명이었으나 2000년 1078만명으로 300만명 이상 늘어나는 등 매년 급증세다.


◆ 유연근로

근로자 개인의 여건에 따라 근무시간과 형태를 조절할 수 있는 근로제도. 주5일 전일제 근무 대신 재택근무나 변형근로, 재량근로, 단시간근로 등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하게 된다. 임금 및 고용 조정, 업무량에 따른 근로시간 연장이나 단축도 유연근로의 범주에 속한다.


도쿄=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