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상안전요원(life guard)·응급심폐소생술(CPR)·스킨스쿠버다이빙 자격증 등 3개를 미군부대에서 취득, 테니스 대학동아리 단체전 우승, 패러글라이딩 3000m·암벽등반 15m 성공….

‘농협 체육특기생인가?’ JOB 인터뷰를 위해 미리 받아본 박한나 씨(32·7급) 이력서를 보고 든 생각이다. 더 놀란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란 사실. 도대체 농협은행은 왜 박씨를 뽑았을까. 이력서만으론 상상할 수가 없었기에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지난 금요일 오후 서울 충정로 NH농협은행 본사에서 만난 박씨의 얼굴은 밝았다. 아침 일찍 김천에서 KTX를 타고 온 박씨는 운동복으로 갈아입자마자 사진 촬영을 위해 테니스라켓을 휘둘렀다. 2시간의 촬영에 지쳤을 법도 한데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1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자신의 지나온 삶을 쭉 이야기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몸이 예년 같지 않네예. 호호호.” 가끔씩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에 동행한 대학생 등 모두가 나자빠졌다. 한마디로 긍정과 유머로 똘똘 뭉친 ‘슈퍼우먼’이었다.

○좋은 친구·선생님·상사의 福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서울말도 쉽게 구사했다).” 경북대 기숙사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 나타샤와의 만남은 박씨의 인생을 바꿨다. “나타샤를 통해 또 다른 외국인 친구를 많이 만났어요.” 박씨는 기숙사 외국인 룸메이트들의 가이드가 됐다. 은행 통장을 개설해주고, 대구의 팔공산을 함께 오르고, 유적지를 찾아 한국 문화를 소개하면서 자연스레 영어를 익혔다. 교수님의 소개로 얻은 해외인턴 프로그램은 박씨의 삶을 점프시켰다. “인턴 참가수기를 정성껏 써 냈더니 교수님이 칭찬해주셨어요.” 교수의 소개로 박씨는 대구 미8군부대의 각종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수상안전요원·심폐소생술·스킨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그때 땄다. “발톱이 빠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죠. 친구들은 다 중도에 그만뒀지만….” 이로 인해 교수들도 미군도 박씨를 신뢰하게 됐다. 부대 내 법무팀 인턴과 통역일도 맡겨졌다.

또 미국 싱크탱크 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미국기업연구소)

턴 때 만난 아이비리그 대학생들과의 교류는 박씨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하버드생들은 한국의 정치·경제·문화에 대해 놀랄 정도로 자세히 알고 있었어요. 한국에 대한 잘못된 옛날 자료를 업데이트하고 그들과 토론을 했죠. 나중에 상사가 ‘한국이 너 같은 친구가 있기에 발전하는 것 같다’며 극찬하더라고요.”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하버드·예일·스탠퍼드대 여대생들과의 만남은 큰 축복이었다. “그들과 테니스, 마라톤, 암벽등반,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도전의식이 생겼어요. 제 손을 잡아 이끌어주고 힘을 주는 말을 들으면서 무서움도 극복할 수 있었죠.”

○외국계 기업 ‘두 번의 해고’

대학에서 심리학과 법학을 복수전공한 박씨는 헤드헌팅사의 소개로 주한 미국 기업(부동산개발회사)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미국 현지 로펌에서 1년간 인턴을 한 게 도움이 됐어요.” 취직한 기업에선 매일 아침 콘퍼런스콜(화상회의)이 열렸다. 긴장 속에 한·미 변호사들이 쟁점을 분석하면 박씨가 기본계약서를 작성했다. 2년여의 삶은 전투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발 금융위기로 박씨는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되는 아픔을 겪었다. 또다시 헤드헌터의 도움으로 입사한 주한 캐나다 기업(원자력 관련). 거기서 박씨는 연봉 1억원의 커리어우먼이 된다. “대학 시절 30세에 연봉 1억원 목표를 세웠어요. 그 꿈을 이뤘던 거죠.”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 모기업의 부도로 해고를 당했다. 잘나가던 커리어우먼은 또 실업자가 됐다. 박씨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재취업 활동의 일환으로 우연히 원서를 낸 농협에서 합격 문자를 받았다. “야~ 농협이라면 부도 위기는 없겠구나.”

○김천의 외국인을 농협 고객으로

‘함께 자라고, 함께 살아가는 꿈’. 농협 연수원에서 강조한 ‘같이의 가치’는 이전 외국계 기업문화와는 달랐다. “정(情)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여기가 내가 머물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하지만 영어엔 강했지만 숫자에는 약한 박씨에게 은행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한번은 업무 마감시간에 고객 돈을 맞추는데 200만원이 비었어요. 선배님들이 모두 함께 CCTV를 보면서 도와줘서 해결할 수 있었죠.

감사했어요.” 이후 김천시지부에서 근무하는 박씨의 영어 실력을 알아본 팀장은 그에게 외환업무를 제안했다. 비록 시골이지만 그는 김천에 사는 외국인 모두를 고객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년간의 환율표를 옆에 놓고 외화예금에 가입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끌어온 외국인 단골만 벌써 수십명이 된다. “한 미국인이 3000만원이 넘는 돈을 그냥 자유입출금 통장에 놔두고 있는 거예요. 고금리 정기예금을 소개했더니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입소문이 퍼져 김천시내 중·고교 외국인 영어선생님들도 농협의 고객이 되고 싶어한단다. 박씨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농협 내 외환업무 평가에서 박씨가 속한 김천시지부가가 전국 1, 2위를 다투게 됐다.

○“기회는 만들어 가는 것”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사실은 제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를 몰랐어요. 그냥 부딪쳐본 거죠. 그 경험이 저의 재능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박씨는 커리어우먼이 될 후배들에게 “만일 자신이 진정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았다면 거기에 올인하세요. 기회는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자신의 강점이 ‘잘웃는 얼굴, 영어 그리고 한국 역사를 잘 아는 것’이라고 말하는 박씨는 대학 시절부터 동의보감, 토지, 태백산맥 등 책을 통해 역사관을 세운 게 미국 생활에서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단순히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것보다 뚜렷한 역사관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는 게 중요해요. 그것이 먹혀요.” 농협에서의 꿈을 묻자 “우선 김천에 사는 외국인을 다 고객으로 만든 뒤엔 서울 종로의 외국인 그리고 나아가 뉴욕법인에 가서 우리 농협 상품을 알리고 싶다.”면서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좋은 상품을 개발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요즘 쉬는 날엔 운동 대신 쇼핑을 한다는 박씨가 인터뷰 마지막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제가 못 해본 게 딱 하나 있는데예(이땐 다시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그건 연애라예. 그저 마음씨 따뜻한 사람이면서 제게 ‘뻑’ 갈 수 있는 사람이면 오케이입니더.”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는 동행한 사람들을 또 한번 배꼽 빠지게 웃겼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