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인한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 등에 따라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특히 사회안전망이 부족하고 서민금융제도도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부업과 사채시장으로 내몰린 서민들은 높은 대출 금리에 허덕이고 있다. 게다가 대부업자들의 불법적인 영업과 채권 추심으로 인해 서민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빚의 구렁텅이에 빠져 개인의 신용뿐만 아니라 가정까지 파탄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경제위기는 오히려 대부업자들에게 고리대금 영업을 부추길 기회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그만큼 수요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민금융에 대한 정부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서민과 영세자영업자가 어쩔 수 없이 이용해야 하는 대부업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이자 상한선을 현행 연 39%에서 연 3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법의 허점을 이용해 이자율의 제한없이 폭리를 취해 온 미등록 대부업자(불법 사채업자)의 상한이자를 아예 연 20%로 명시하고, 대부업체의 무리한 과대광고를 제한하는 개정 법률안(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이하 대부업법)을 발의했다. 이와 함께 불법적인 채권 추심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개정을 병행해서 추진하고 있다.

이자 상한선 연 30%는 업계 주장처럼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 아니다. 지난 5월 기준 예금은행 가계대출 평균이자가 연 6.89%임을 감안하면 4.4배 수준이다. 최근 10년 동안 예금금리는 연 3%대의 초저금리 기조가 유지됐다. 우리나라에서 이자제한 제도가 도입된 1962년 이래 가장 오랫동안 유지됐던 상한이자가 연 25%였음을 감안하면 현행 연 39%는 매우 높은 이자율이다.

무엇보다 이자제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선진 각국의 이자상한이 연 20%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본만 하더라도 서민과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최근 대금업에 대해 이자제한법상의 제한금리인 연 15~20%를 적용하고 있다. 악화된 수익성 때문에 한국으로 넘어온 일본계 대부업체들을 우리나라 서민들이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민금융과 관련해서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가 금리상한선을 내리는 것이고, 두 번째가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이다. 고리대금업이 활개를 치고 있는데도 이를 사적자치의 영역으로 치부한 채 정부가 과대광고와 불법추심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사이 남은 삶을 포기하는 서민들이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다. 금융지식이 부족한 서민들이 광고 속 유명 연예인이 말하는 ‘누구나 대출’의 유혹에 빠져 고리대금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빠져나올 수 없는 길을 안내하는 광고가 버젓이 TV에 나온다는 것은 TV에 마약광고가 나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서민금융과 관련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통해 사금융에 대한 수요 자체를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민들이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장기저리대출 제도 등 대안적 서민금융 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 우선 상호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이 진정한 서민금융회사로 거듭나야 한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를 본보기 삼아 서민금융을 담당하는 금융회사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엉뚱한 짓을 못하도록 규제하고 지역밀착형 관계금융을 강화해 서민금융회사 본연의 모습을 되찾도록 해야 한다. 상호저축은행 등이 서민금융회사로서의 역할만 다 해도 대부업체로 흘러드는 수요를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생계형 소액대출이나 소규모 창업을 지원하는 5조4000억원 규모의 서민우대 정책금융(햇살론, 새희망홀씨 등)도 2배 이상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연대은행이나 마이크로크레디트 같은 대안금융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대폭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안적 금융시스템 구축은 4대강에 쏟아부을 예산의 일부만 있어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또 매년 조 단위의 이익을 내고 있는 은행권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서민금융정책에 참여한다면 재원마련 문제는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이자율 제한 논의만 나오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것이 ‘사금융의 음성화’와 ‘풍선효과’ 논리다. 수익성 악화로 사금융이 음성화돼 더 많은 피해자가 양산될 것이라는 논리인데, 이쯤 되면 이건 자해공갈에 가까운 주장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초고금리에 대한 체계적인 규제, 불법 사금융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 금융시장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감독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결국 시장 평균금리에 비해 과도한 금리를 요구하는 고금리 시장은 축소·소멸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11년 12월6일 정부 발표 보도자료를 보면 이자율 상한선이 꾸준히 하향 조정되는 과정에서도 등록 대부업 거래고객과 대출금 규모가 계속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가 매우 과장돼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배울 것은 철지난 금융회사 대형화, 합법화 정책이 아니라 고리대금업에 대한 철저한 규제정책이다. 가계대출과 저축은행 문제로 서민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 가는데 정부는 이렇다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와 불법추심 문제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의 고통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대안제시 없이 풍선효과와 음성화 문제만 거론하면 대부업체의 권리만 주장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는 금융감독당국의 정책의지가 중요하다. 우선 대부업체의 상한이자를 ‘사채시장 양성화를 위해 높게 유지해야 한다’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소외자를 위한 서민금융 활성화 방안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불법적인 사채업자의 폭리는 엄벌함으로써 불법 음성화에 따른 기대이익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김기준 민주통합당 의원

△서울대 무역학 학사 △전 외환은행노조위원장 △전 금융산업노조위원장 △현 투기자본감시센터운영위원 △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 △비례대표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