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4000억 규모 사상최대 '환치기' 적발
5년에 걸쳐 1조4000억원 규모의 수출대금을 빼돌려온 환치기(불법 외환거래) 일당이 적발됐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12일 1조4000억원대 규모의 불법 외환거래를 일삼은 환전상, 무역업체, 환치기 업자 등 일당 10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적발된 불법 외환거래 규모는 1970년 관세청이 설립된 후 사상 최대다. 지난해 적발된 전체 불법 외환거래(3조8111억원)의 36.7%에 달하는 수준이다.

○환치기 전 과정 원스톱으로 대행

동대문 일대에서 수출물품을 포장하는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2007년 신종 환치기 수법을 개발한 뒤 은밀하게 대일본 무역업체를 모집했다. 불법 외환거래만 대행해주는 일반 환치기와 달리 밀수출부터 대금회수, 불법 자금 조성까지 원스톱으로 대행해주는 방식이었다.

A씨는 일본과 무역을 하는 한 수출업체에 접근, 일본에 밀수출을 알선했고 이 업체는 해당 매출액을 누락시켰다. 일본의 수입업체는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A씨의 공모자에게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했고 이 공모자는 수십차례에 걸쳐 수출대금을 현금(엔화)으로 가방에 담아 인천공항까지 운반했다. 외국인이 국내로 사업자금을 반입할 때 아무 제한이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전달받은 엔화를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선 환전상을 동원했다. A씨와 결탁한 환전상 B씨는 보관 중이던 외국인 여권 사본을 이용해 마치 수백명의 다른 외국인에게 환전을 해준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 당국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보고 기준인 미화 5000달러 이하로 쪼개는 불법 환전을 반복했다. A씨는 밀수출 대금을 환전상을 통해 수출업체에 넘겼고 수출업체는 A씨에게 수수료를 지급했다. 이들의 이 같은 범죄는 무려 5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이를 통해 1조원이 넘는 돈이 불법 환전됐고 수출업자와 A씨 등은 소득세 등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1조4000억 규모 사상최대 '환치기' 적발
○47억원 현금가방으로 옮기다 적발

완전범죄가 될 뻔했던 이들이 적발된 것은 지난 5월 초.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면서였다. 한 외국인이 계속해서 일본에서 돈을 들여와 사업자금 등록을 해 놓고 바로 출국을 한다는 제보였다.

서울본부세관 외환조사과 직원들이 일본 공모자(현금 운반책)를 추적하기 시작한 끝에 인천공항에서 A씨에게 가방을 전달하는 현장을 덮쳤다. 여행가방에선 총 3억2000만엔(약 47억원)이 100만엔 현금 다발뭉치로 쏟아져 나왔다. 이어 A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서울본부세관은 그동안의 불법 환전 내역 등을 확보했다. ‘밀수출→현금반입→불법환전→비자금 조성’으로 이어지는 환치기 사건 전모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서울본부세관은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환치기 업자인 주범 A씨와 환전상 등 일당 8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일본인 현금 운반책 2명을 지명수배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건 외에도 불법 환전을 의뢰한 무역업체가 130개나 있는 것으로 드러나 조사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